“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15건)
표제어(5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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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견(朴守堅)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효행(孝行)으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음. 친상(親喪)에 시묘 3년 후에도 묘소를 떠나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묘소 앞에 모선정(慕先亭)을 짓고 그 일대를 모선(慕先)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전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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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朴雲)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효자ㆍ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박영(朴英)의 문인(門人). 이언적(李彦迪)ㆍ이황(李滉) 등과 교유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선조(宣祖) 때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짐.
1493~156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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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훈(朴應勳)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효성이 지극하여 1601년(선조 34)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황간(黃澗)의 송계서원(松溪書院)에 배향됨.
1539~1590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충주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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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朴仁壽)
고려 말~조선 초의 효자. 하륜(河崙)의 《호정집(浩亭集)》에 그의 효성을 읊은 시가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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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좌(金時佐)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시었고, 어머니가 죽자 여막(廬墓)에서 3년간 살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함. 또 중종(中宗)과 명종(明宗)의 국상(國喪)에 3년간 심상(心喪)을 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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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창(金始昌)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 유학ㆍ효자(孝子). 본관은 금산(金山).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현량과(賢良科)에 피천(被薦)되었으나 나가지 않음.
1472~155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금산 , 인명>문사>유학ㅣ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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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음(金爾音)
고려 우왕(禑王)~조선 태종(太宗) 때의 문신ㆍ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권근(權近)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진양(晉陽)에서 처음 간행하고, 효행이 뛰어나 정문(旌門)을 하사받음.
?~1409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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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禹思仁)
조선 전기의 문신. 이이(李珥)의 문인(門人).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음.
1527~? 한국>조선전기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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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웅(柳夢熊)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본관은 흥양(興陽). 유탱(柳樘)의 아들로, 1585년(선조 18)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형 유몽표(柳夢彪)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피란 도중 왜적이 어머니를 향해 칼을 내려치자 몸으로 막아 보호하고 죽음.
1557~1592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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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년(謝大年)
중국 명(明) 나라의 효자. 고려 말의 문신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사대년이 양친(養親)을 생각하며 지은 '망운시(望雲詩)'를 소재로 하여 시를 짓기도 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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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릉(徐稜)
고려 고종(高宗) 때의 문신ㆍ효자. 본관은 이천(利川). 시중(侍中)을 지냈으며, 절효(節孝)로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됨.
한국>고려후기 , 전라도>장성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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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孫順)
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 때의 효자. 경주손씨(慶州孫氏)의 시조.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어린아이를 매장하려다 석종(石鐘)을 얻은 후 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후에 옛집을 희사하여 홍효사(弘孝寺)라는 절을 삼았다 함.
한국>통일신라 , 경상도>경주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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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정자춘(樂正子春)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학자ㆍ효자. 증삼(曾參)의 문인(門人)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상을 당하자 5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고, 당(堂)을 내려가다 발을 다치자 효심을 망각한 것이라 하여 수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며 근심하였다 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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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립(梁山立)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장자(長子). 효천(孝薦)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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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축(梁山軸)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넷째 아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진주 남쪽 삼향포(三鄕浦)에서 왜적을 만나 일가가 모두 순절함.
1571~159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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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옹백(楊雍伯)
중국 전한(前漢)의 효자. 낙양(洛陽) 출신으로, 물이 귀한 무종산(無終山)에서 음료를 제공하는 선행을 쌓은 끝에 선인(仙人)에게 돌멩이를 받아 남전(藍田)에 뿌렸더니 모두 옥(玉)으로 자라났으며, 그 옥을 캐어 아름다운 아내를 얻었다 함.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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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룡(梁天龍)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으로, 집현전 대제학(集賢殿大提學) 양우(梁祐)의 아들. 공양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남원에 은거함.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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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구(成德求)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성긍주(成肯柱)의 아버지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냄. 효성이 지극하여 나라로부터 정문(旌門)의 표창을 받음.
1721~176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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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선(柳仁善)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자미(柳自湄)의 재종손(再從孫)으로, 사산 감역(四山監役)을 역임함.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조정에서 ‘효우문(孝友門)’을 정려(旌閭)하였으며, 양사언(楊士彦)이 〈효우문전(孝友門傳)〉을 지음.
1492~?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포천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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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은(尹鳴殷)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인조의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하다가 유배되고, 병자호란 때 남양(南陽)에서 조익(趙翼)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旌門)이 세워짐.
1601~164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남포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