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449건)
표제어(94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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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상(金履祥)@송
중국 송(宋)~원(元) 나라의 학자. 정주학(程朱學)을 연구하여 왕노재(王魯齋)ㆍ하북산(何北山)에게 사사하고, 주자(朱子)ㆍ황면재(黃勉齋)의 학통(學統)을 이어받아, 절학(浙學)을 중흥함.
1232~1303 중국>원ㅣ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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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존(金仁存)
고려 선종(宣宗)~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중국에 여러 번 사신으로 다녔으며, 중요한 국사(國事)마다 왕의 자문역을 했음.
?~1127 한국>고려전기 , 강원도>강릉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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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金麟厚)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울산(蔚山).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ㆍ옥과현감(玉果縣監) 등을 지냈으나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함.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경(誠敬)의 실천을 중시하였고, 1796년(정조 20)에 문묘에 배향됨.
1510~1560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장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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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金馹孫)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스승인 김종직(金宗直)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록(實錄)에 기재한 일로 인해 훈구파(勳舊派)의 미움을 사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사형당함.
1464~149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청도ㅣ경상도>밀양ㅣ경기도>용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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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金長生)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이이(李珥)의 문인(門人)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서인(西人)의 영수 역할을 하였고,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함.
1548~163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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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金㙉)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문학으로 이름이 남.
153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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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金正國)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동생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탈관직되었다가 복직됨.
1485~1541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고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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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金宗德)
조선 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성학입문(聖學入門)》 등 많은 저술을 남김.
1724~1797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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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金宗直)
조선 단종(端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ㆍ길재(吉再)의 학통을 이어받은 조선 도통(道統)의 정맥으로 사림(士林)의 종주(宗主)가 됨.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부관참시(剖棺斬屍) 됨.
1431~149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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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金集)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예학(禮學)을 대성시킴. 대사헌(大司憲)ㆍ좌찬성(左贊成) 등을 지내고, 효종과 북벌(北伐)을 계획함.
1574~1656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연산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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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즙(金昌緝)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다섯째 아들. 조봉원(趙逢源)의 문인이며, 여섯 형제들이 문장의 대가(大家)라 육창(六昌)이라 불림.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된 뒤 학문에 전념하였고,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냄.
1662~171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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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金昌協)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자 김창집(金昌集)의 동생.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은거함.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이기론(理氣論)을 절충한 학설을 주장하고, 《농암집(農巖集)》을 남김.
1651~170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경기도>과천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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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金昌翕)
조선 현종(顯宗)~경종(景宗) 때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여 학자로 이름을 떨침.
1653~1722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영평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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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성(金就成)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선산(善山)으로, 김광좌(金匡佐)의 아들. 평생 학문탐구에 힘쓰며, 의학을 연구하여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줌.
1492~1551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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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金台鼎)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학자. 상호군(上護軍) 김자휘(金自輝)의 아들. 1450년(세종 32)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씀.
1426~1478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광산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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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언(禹善言)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노자(老子)ㆍ장자(莊子) 등의 고고한 학풍을 좋아하여 권세와 명예를 천하게 보는 청담파(淸談派)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유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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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행(于愼行)
중국 명(明) 나라 목종(穆宗)~신종(神宗) 때의 문신ㆍ학자. 상중(喪中)에 출사한 장거정(張居正)의 행위를 논하다가 미움을 받아 낙향하고, 후에 복직하여 태자소보(太子少保) 등을 지냄. 풍기(馮琦)와 함께 문학(文學)으로 명성을 떨침.
1545~1607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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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于濟)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작시법(作詩法)을 실제적으로 제시한 《연주시격(聯珠詩格)》을 편저함.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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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집(虞集)
중국 원(元) 나라의 시인ㆍ학자. 당시(唐詩)를 연구 계승하여, 양재(楊載)ㆍ범곽(范椁)ㆍ게혜사(揭傒斯)와 함께 원시사대가(元詩四大家)로, 또는 유관(柳貫)ㆍ황진(黃溍)ㆍ게혜사와 함께 유림사걸(儒林四傑)로 불림. 만권당(萬卷堂)에 초치(招致)되어 이제현(李齊賢) 등과 교류함.
1272~1348 중국>원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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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탁(禹倬)
고려 충렬왕(忠烈王)~충혜왕(忠惠王) 때의 문신ㆍ학자. 영해 사록(寧海司錄)이 되어 요신(妖神)의 사당(祠堂)을 철폐하고, 충선왕(忠宣王)의 잘못을 극간한 뒤 향리로 물러나 후진교육에 전념함.
1263~1342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단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