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
양노(梁櫨)
조선 전기의 문신. 관직은 찰방(察訪)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인명>관인>문신
-
양담(羊曇)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문인. 사안(謝安)의 생질로, 시문(詩文)에 능하였음. 사안의 사랑을 받다가 그가 죽자 서주(西州)의 길을 차마 지나가지 못하였는데, 어느날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서주의 성문에 이르자 슬퍼하며 통곡하고 떠나갔다 함.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문사>문인
-
양대(楊戴)
중국 당(唐) 나라 때의 문인. 양경지(楊敬之)의 아들로, 문종(文宗) 때 아버지는 태상소경(太常少卿)이 되고 형 양융(楊戎)과 더불어 등과(登科)하여, 당시에 ‘양가삼희(‘楊家三喜)’로 일컬어졌으며, 함께 문명(文名)을 떨침.
중국>당 , 중국 , 인명>문사>문인
-
양대박(梁大樸)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남원(南原).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아들 양경우(梁慶遇)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담양(潭陽)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高敬命)을 맹주로 추대한 뒤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함.
1544~1592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
양덕부(梁德符)
조선 세종(世宗) 때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정언(正言) 성자량(成自諒)의 사위이며, 양여창(梁汝昌)의 아버지로, 별시위(別侍衛)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무신
-
양도(楊滔)
중국 당(唐) 나라의 문신. 중사(中舍)로 있을 때, 급히 조서를 만들려고 창고의 창문을 뚫었다고 하여 착창학사(斲窓學士)라는 별칭을 얻음.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도부(兩都賦)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ㆍ학자인 반고(班固)가 지은 부(賦). 서도부(西都賦)와 동도부(東都賦) 두 편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는데, 서도(西都)인 장안(長安)과 동도(東都)인 낙양(洛陽)의 역사ㆍ지형ㆍ풍물 등을 소재로 하여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 서술함.
중국>후한 , 중국 , 문헌>작품명
-
양돈(楊墩)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인. 1498년(연산군 4)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함.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사표(師表)가 됨.
1461~1512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임실 , 인명>문사>문인
-
양동무(楊東茂)
고려 원종(元宗) 때의 무신. 당악군(唐岳君) 양포(楊浦)의 아버지로, 1270년(원종 11) 진도(珍島)에 웅거한 삼별초(三別抄)를 토평할 때 참전하여 포위된 김방경(金方慶)을 구하는 등 공을 세웠으며, 이부 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냄.
한국>고려후기 , 평안도>중화 , 인명>관인>무신
-
양동재(梁棟材)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낸 양준(梁遵)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大提學)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제주 , 인명>관인>문신
-
양득의(楊得意)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 구감(狗監)을 역임하였으며, 무제가 〈자허부(子虛賦)〉를 읽은 후 그 지은이와 동시대에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자, 지은이이자 자신의 벗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추천함.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량(楊諒)
중국 수(隋) 나라 문제(文帝)의 넷째 아들. 수 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고구려를 침공함.
중국>수 , 중국 , 인명>왕실>왕자
-
양렴(楊廉)
중국 명(明) 나라 헌종(憲宗) 때의 문신ㆍ학자. 양숭(楊崇)의 아들로, 성력(星曆)과 산수(算數)에 능함.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양류소만요(楊柳小蠻腰)
버들가지 같은 소만(小蠻)의 허리. 당(唐) 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버들가지를 자신의 가기(家妓) 중에 춤을 잘 추는 소만의 허리에 비유하여 읊은 시에서 유래한 말로, 가느다란 버들가지를 뜻함.
중국>당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
양릉정(陽陵井)
경기도 개성(開城) 남쪽 8리 지점에 있는 우물 이름. 개성대정(開城大井)ㆍ광명사정(廣明寺井)과 함께 개성의 삼대신정(三大神井)으로 일컬어지며, 1370년(공민왕 19) 명(明) 나라의 사신인 도사(道士) 서사호(徐師昊)가 이곳에 와서 제사지냄.
한국>고려시대 , 경기도>개성 , 유적>기타유적
-
양만리(楊萬里)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ㆍ시인. 비서감(秘書監)을 지내고, 사부(詞賦)에 뛰어나 육유(陸游)ㆍ범성대(范成大)ㆍ우무(尤袤)와 더불어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로 일컬어짐.
1127~1279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양만용(梁曼容)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양산축(梁山軸)의 아들이며, 강항(姜沆)ㆍ박동열(朴東說)의 문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고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책록됨.
1598~1651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
양만춘(楊萬春)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의 안시성(安市城) 성주(城主). 지모(智謀)와 용기(勇氣)가 뛰어났으며,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정변과 당(唐) 나라 태종(太宗)의 침공 때 불굴의 의지로 싸워 승리함.
한국>고구려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매(楊梅)
조선 전기의 문신 최연(崔演)의 《간재집(艮齋集)》에 실려 있는 〈국수재전(麴秀才傳)〉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
양면(楊沔)
조선 세조(世祖)~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양후(楊厚)의 손자이며 양자순(楊子淳)의 아들. 교리(校理)ㆍ첨정(僉正) 등을 지냄.
1444~1500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
양명학(陽明學)
중국 명(明) 나라의 학자 왕수인(王守仁)이 주창한 유가철학(儒家哲學)의 한 학파. 정주이학(程朱理學)과 대립되는 성격으로, 육구연(陸九淵)의 학설을 계승하여 심즉리(心卽理)ㆍ치양지(致良知)ㆍ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함.
중국>명 , 중국 , 사상>이론>학설
-
양무소왕(涼武昭王)
중국 남북조시대 서량(西涼)의 초대 왕. 재위 400~417. 재위 중 우병우농(寓兵于農)과 문화교육 정책을 시행하여 부국강병을 꾀함. 문학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임.
351~417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왕실>국왕
-
양박(楊博)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 세종을 보좌하여 내외직을 오가며 정무에 힘쓰고 외구 및 변방 수비에 공로를 세움.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내며 좌도어사(左都御史) 갈수례(葛守禮)와 함께 당대 명신으로 불림.
?~1574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방(楊方)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 주자(朱子)의 문인. 회계(會稽) 사람으로, 고량 태수(高凉太守)를 지냄.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방형(楊邦亨)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무신. 1595년(선조 28) 흠차책봉일본정사(欽差冊封日本正使) 이종성(李宗城)을 따라 부사(副使)로 조선에 나왔으며, 도중에 이종성이 도망치자 정사가 되어 일본에 가서 풍신수길(豐臣秀吉)과 협상하였으나 실패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무신
-
양배선(楊拜善)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중화(中和)로,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양희지(楊熙止)의 아들. 몸가짐을 삼가며 문예(文藝)에 뛰어나 김안국(金安國)의 천거를 받았으며, 이황(李滉)ㆍ최연(崔演)ㆍ안관(安瓘) 등 당대 명사들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대구 , 인명>관인>문신
-
양백연(楊伯淵)
고려 공민왕(恭愍王)~우왕(禑王) 때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흥왕사(興王寺)의 변(變)을 평정한 공으로 추성익위공신(推誠翊衛功臣)에 책록되고, 여러 차례 왜구(倭寇)를 격퇴하였으나, 후에 이인임(李仁任) 등의 미움을 받아 합주(陜州)로 귀양 갔다가 살해됨.
?~1379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
양백화(楊白花)
악부(樂府) 잡곡가사(雜曲歌辭)의 하나.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명장(名將)인 양대안(楊大眼)의 아들 양화(楊華)를 추모하기 위해 선무영황후(宣武靈皇后)가 지은 노래.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문헌>작품명
-
양병(楊秉)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의 문신. 양진(楊震)의 아들로, 역학(易學)과 《서전(書傳)》에 밝고, 매우 청렴하여 술과 여색과 돈에 미혹되지 않았다 하여 ‘삼불혹(三不惑)’으로 일컬어졌으며, 태위(太尉) 등을 지냄.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복(楊復)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주희(朱熹)의 문인으로 《의례도(儀禮圖)》를 저술하고, 《가례(家禮)》의 주석을 냄.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
양부(楊溥)
중국 명(明) 나라 혜제(惠帝)~영종(英宗) 때의 문신. 무영전 대학사(武英殿大學士) 등을 지내고, 양우(楊寓)ㆍ양영(楊榮)과 함께 정사를 잘 보살펴 ‘삼양(三楊)’으로 일컬어짐.
1372~1446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양사기(楊士奇)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양희수(楊希洙)의 아들로, 원주(原州) 등 7개 읍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으며, 형 양사준(楊士俊)ㆍ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시(詩)에 뛰어났음.
1531~158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양사언(楊士彦)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청주(淸州). 회양(淮陽)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자연을 즐기고, 시(詩)ㆍ서(書)에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ㆍ김구(金絿)ㆍ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사대(四大) 서예가로 불림.
1517~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
양사원(梁泗源)
조선 전기의 문신. 양산보(梁山甫)의 부친. 본관은 제주(濟州). 은덕(隱德)이 있어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음.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창평 , 인명>관인>문신
-
양사준(楊士俊)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양희수(楊希洙)의 아들로, 형 양사언(楊士彦), 동생 양사기(楊士奇)와 더불어 문명(文名)을 날려 당시에 중국의 소순(蘇洵)ㆍ소식(蘇軾)ㆍ소철(蘇轍)에 비유되었으며, 정랑(正郞)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양사형(楊士衡)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노진(盧禛)ㆍ유희춘(柳希春)의 문인으로, 영광 군수(靈光郡守) 등을 지냄. 임진왜란 때 군량을 조달하고 윤두수(尹斗壽)를 보좌하였으며 죽은 뒤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추록됨.
1547~159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순창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양산(梁山)
경상도 남동부에 위치한 고을 이름.
경상도>양산 , 지명>행정지명
-
양산룡(梁山龍)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幼學)ㆍ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제민(宋濟民)ㆍ양산숙(梁山璹)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함.
1552~?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문사>유학
-
양산립(梁山立)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장자(長子). 효천(孝薦)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기타인명>효자
-
양산보(梁山甫)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1519년(중종 14)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실각하자 귀향하여 소쇄원(瀟灑園)을 짓고 한평생 은거함.
1503~155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담양 , 인명>문사>학자
-
양산수(梁山秀)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양응기(梁應箕)의 아들.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숙(梁山璹)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경전공부에 전심하여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병학(兵學)에 통달함.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다가 진주성(晉州城)에서 순절함.
1561~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욱(梁山旭)
조선 선조(宣祖) 때의 의사(義士)ㆍ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언림(彦霖) 양응필(梁應畢)의 아들. 임진왜란 때에 의거하였으며, 예빈시 봉사(禮賓寺奉事)을 지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준(梁山浚)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로, 예빈시 봉사(禮賓寺奉事)를 지냈으나 일찍 죽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중(梁山重)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낸 양응태(梁應台)의 아들.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축(梁山軸)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본관은 제주(濟州).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넷째 아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진주 남쪽 삼향포(三鄕浦)에서 왜적을 만나 일가가 모두 순절함.
1571~1598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기타인명>효자
-
양산한(梁山翰)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을 지냈으나 일찍 죽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항(梁山杭)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아들인 양응덕(梁應德)의 넷째 아들. 영해 부사(寧海府使)를 지냄.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양산해(梁山海)
조선 후기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아들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문인(門人). 학행(學行)으로 호조 참판(戶曺參判)에 추증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양산형(梁山逈)
조선 후기의 유학.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병절교위(秉節校尉) 양응기(梁應箕)의 아들.
1545~?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영암 , 인명>관인>문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