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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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石門) - 윤복(尹復)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해남(海南). 명종(明宗) 때 낙안 군수(樂安郡守)가 되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고, 안동 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로 시절 이황(李滉)과 교유함.
1512~157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해남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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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石門)@윤흠중 - 윤흠중(尹欽中)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해남(海南). 윤복(尹復)의 아들이며,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벼슬하지 않고 은거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해남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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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石門)@윤봉오 - 윤봉오(尹鳳五)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 윤명운(尹明運)의 아들이며, 윤봉구(尹鳳九)의 아우로, 연잉군(延礽君) 시절의 영조를 측근에서 보필하였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등을 역임함.
1688~1769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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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錫文) - 조석문(曺錫文)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관찰사를 지낸 조항(曺沆)의 아들. 노사신(盧思愼)과 함께 《북정록(北征錄)》을 편찬하고, 영의정(領議政)을 지냄.
1413~147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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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벽(石壁) - 홍춘경(洪春卿)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예문관 대교(藝文館待敎) 홍계정(洪係貞)의 아들로,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ㆍ이조 참의(吏曹參議) 등을 지냄. 김생체(金生體)의 글씨에 능하고, 문장에 뛰어나 중종의 지문(誌文)을 지음.
1497~154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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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石屛)@도국흥 - 도국흥(陶國興)
일본 강호시대(江戶時代)의 문신. 태학사(太學士)를 지냄.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에 갔던 김성일(金誠一)에 관한 기록을 보고, 김성일의 신의(信義)에 감복해 그의 후손에게 흠모(欽慕)의 정을 표하는 편지를 보냄.
일본>강호시대 , 일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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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石屛) - 대복고(戴復古)
중국 송(宋) 효종(孝宗)~이종(理宗) 때의 시인. 강호파(江湖派)의 대표적 시인으로서 유명하며, 한때 대시인(大詩人) 육유(陸游)에게서 시를 배움.
1167~?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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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碩甫) - 신언(申彦)
고려 후기의 문신. 현감(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색(李穡)의 《목은고(牧隱稿)》에 그를 전송하며 지은 시가 실려 있음.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영해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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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碩輔) - 윤석보(尹碩輔)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간신 임사홍(任士洪)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대사간(大司諫) 때 연산군에게 충언(忠言)하다가 유배되어 죽음. 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됨.
?~1505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칠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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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錫甫) - 이경억(李慶億)
조선 인조(仁祖)~현종(顯宗)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판서(判書) 이시발(李時發)의 아들이며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경휘(李慶徽)의 동생으로, 좌의정(左議政) 등을 지냄.
1620~167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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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정(石保正) - 이복생(李福生)
조선 전기의 종친. 정종(定宗)의 증손이며 곡성군(鵠城君) 이금손(李金孫)의 아버지로, 석보정(石保正)에 봉해짐.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전주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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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碩福)@홍석복 - 홍석복(洪碩福)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남양(南陽). 군수 홍사원(洪士源)의 아들이며 기묘명유(己卯名儒) 홍순복(洪順福)의 아우로, 1534년(중종 29)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공주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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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碩福) - 오석복(吳碩福)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오언의(吳彦毅)의 아버지로, 의령 현감(宜寧縣監)을 지냄.
1455~153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함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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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石峯) - 한호(韓濩)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삼화(三和). 글씨를 잘 써서 외교문서 등을 맡아 썼으며, 중국에 사절이 갈 때도 서사관으로 파견되어 정묘한 필치로 명성을 떨침.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는 서예가로서, 사자관체(寫字官體)라는 서체가 그로부터 형성됨.
1543~1605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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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부광(釋溥光) - 이부광(李溥光)
중국 원(元) 나라의 승려ㆍ서예가. 조맹부(趙孟頫)가 주방(酒坊)에 쓴 그의 글씨를 보고 추천하여 세조(世祖) 때 소문관 태학사(昭文館太學士)에 봉해짐. 한때 궁성(宮城) 전각의 편액(扁額)에 그의 작품이 많았다고 함.
중국>원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ㅣ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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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북(石北) - 신광수(申光洙)
조선 영조(英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1746년(영조 22)에 관산융마(關山戎馬)란 시(詩)로 급제했는데, 이 시는 당시 과시(科詩)의 모범이 됨. 1774년(영조 50)에 관서지방의 풍속ㆍ고적ㆍ고사 등을 소재로 한 관서악부(關西樂府)를 지었으며, 《석북집(石北集)》을 남김.
1712~177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고령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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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石寺) - 응석사(凝石寺)
경상도 영천(榮川)에 있는 사찰. 박승임(朴承任)과 문하생들이 응석사(凝石寺)를 유람하면서 지은 시를 〈응석사창수록(凝石寺唱酬錄)〉이라 하는데 《소고집(嘯皐集)》에 실려 있음.
경상도>영천(榮川) , 유적>건물>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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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서(石尙書) - 석성(石星)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 병부 상서(兵部尙書)로서 임진왜란 때 신점(申點)의 간청으로 원군을 조선에 파병하였고, 심유경(沈惟敬)과 화의를 적극 지지했다가 화의의 실패로 체포되어 옥사함.
?~1597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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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선재(石仙齋) - 신광한(申光漢)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대제학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고, 우찬성(右贊成)으로 양관(兩館) 대제학을 겸했으며, 좌찬성(左贊成)을 지냄.
1484~1555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여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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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부(石城府) - 박다(博多)
일본 서해도(西海道) 구주(九州) 가운데 축전주(築前州)에 속한 거진(巨鎭) 이름. 대외교통의 요충지로,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순국한 곳으로 전해짐.
일본 , 지명>행정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