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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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趙勛)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문신 조광림(趙廣臨)ㆍ조광보(趙廣輔)ㆍ조광좌(趙廣佐)의 아버지로, 금산 군수(金山郡守)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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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曺禧)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보문각 태학사(寶文閣太學士) 조순(曺純)의 7대손이며, 조숙덕(曺淑德)의 아들. 1517년(중종 12)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동래 부사(東萊府使) 등을 지냄.
1490~156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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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趙禧)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순창(淳昌). 중종(中宗) 때의 유학인 조필(趙泌)의 아버지.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순창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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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趙希文)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ㆍ문신. 조림(趙琳)의 아들이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 성리학(性理學)에 밝아 김인후의 학설을 계승ㆍ발전시키고, 문장에도 능하여 정철(鄭澈)ㆍ기대승(奇大升) 등과 교유함.
1527~157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함안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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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윤(趙希尹)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한양(漢陽). 장례원 사평(掌隸院司評)을 지낸 조숭조(趙崇祖)의 아들이며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김인후(金麟厚)와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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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한(趙希漢)
중국 송(宋) 나라의 유학. 주자(朱子)의 문인(門人)으로 한주(漢州) 파릉인(巴陵人)임.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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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현(趙希賢)
중국 명(明) 효종(孝宗) 때의 문신. 숭덕현(崇德縣)의 지현(知縣)을 역임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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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한당문집(足閒堂文集)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인 백인국(白仁國)의 시문집. 1권. 목판본. 1909년(순종 3)에 후손 백순우(白淳愚) 등이 간행한 《원고세고(元皐世稿)》에 실려 있음.
1909 한국>근대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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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도(存道)
고려 명종(明宗)~고종(高宗) 때의 승려(僧侶). 운미(雲美)와 함께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최충헌이 집권한 후 왕궁에서 쫓겨남.
한국>고려후기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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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고천백(拙藁千百)
고려 후기의 문신인 최해(崔瀣)의 문집. 2권. 1354년(공민왕 3)에 진주목(晋州牧)에서 개판(開版)되었으며, 현재 일본 존경각문고(尊經閣文庫)에 수장되어 있음.
1354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진주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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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옹집(拙翁集)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인 홍성민(洪聖民)의 시문집. 10권 4책. 목판본. 1634년(인조 12) 손자 홍명구(洪命耉)가 편집ㆍ간행함. 모영(毛穎)이라는 가상의 무신을 등장시킨 〈천군견지수공수성(天君遣志帥攻愁城)〉 등의 작품이 수록됨.
1634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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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재집(拙齋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유원지(柳元之)의 시문집. 12권 6책. 목판본. 15세손인 유종춘(柳宗春) 등이 편집하여 1791년(정조 15)에 초간(初刊)함.
1791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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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존재유고(拙存齋遺稿)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인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의 유고. 《풍천노씨세고(豊川盧氏世稿)》 권1에 실려 있음.
한국>조선시대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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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백(鍾^伯)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의 악공인 백아(伯牙)와 그 친구 종자기(鍾子期)를 함께 부르는 말.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교우를 가리킴.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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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왕(鍾^王)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서예가인 종요(鍾繇)와 남북조시대 동진(東晉)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를 함께 부르는 말. 중국 고금(古今)의 서성(書聖)인 두 사람을 말함.
중국>남북조시대ㅣ중국>삼국시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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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무(宗經茂)
일본 실정시대(室町時代) 대마도(對馬島)의 도주(島主). 종조국(宗助國)의 아들이며, 종뇌무(宗賴茂)의 아버지. 무등씨(無藤氏)를 배경으로 기반을 닦고 고려와 통교(通交)하였으며, 대마도에 법제(法制)를 베풀고 두량(斗量)을 제정함.
일본>실정시대 , 일본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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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변무(宗系辨誣)
조선 태조(太祖) 때부터 선조(宣祖) 때까지 명(明) 나라 사책(史冊)에 잘못 기록된 태조의 종계(宗系)를 바로잡아 줄 것을 주청한 사건. 1394년(태조 3) 태조가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잘못 기록된 것을 인식한 이래 개록을 요구하여 1588년(선조 21) 관철됨.
한국>조선전기 , 사건>기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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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고(宗杲)
중국 송(宋) 나라의 승려. 속성은 해씨(奚氏). 임제종(臨濟宗) 승려로 동산(東山) 혜운사(慧雲寺)의 혜제(慧齊)에게서 득도(得道)하여 구족계를 받고, 원오선사(圓悟禪師)의 법을 전해 받음.
?~1163 중국>송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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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終軍)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문신. 문학과 언변이 매우 뛰어나 약관(弱冠)의 나이로 간대부(諫大夫)에 발탁됨. 남월왕(南越王)에게 한(漢)의 내속(內屬)이 될 것을 설득하여 관철시킴으로써 황제로부터 큰 총애을 받음.
?~B.C.112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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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뇌무(宗賴茂)
일본 실정시대(室町時代) 대마도(對馬島)의 도주(島主). 정평(正平) 연간에 대마도에 법제(法制)를 설치하고 두량(斗量)을 제정한 종경무(宗經茂)의 아들로 우마대부(右馬大夫)를 지냄.
일본>실정시대 , 일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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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덕신편(種德新編)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김육(金堉)이 《소학(小學)》을 읽고 덕을 함양하기 위해 그 요령을 여러 고서(古書)에서 뽑아 엮은 책. 3권 1책. 목판본. 1644년(인조 22)에 초간(初刊)된 것으로 추정됨.
1644?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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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령(宗聆)
고려 후기의 승려. 원효(元曉)의 무애사상(無㝵思想)을 중시하고, 미수사우(眉叟四友)라 불릴 정도로 문학과 시에 능하였으며, 이규보(李奎報)ㆍ이인로(李仁老) 등과 교유함.
한국>고려후기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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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鍾路)
서울 광화문(光化門)에서 동대문(東大門) 사이의 거리 이름. 조선시대에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함. 원래는 광화문에서 종루 사이를 지칭하였음.
서울 , 지명>자연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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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권(鐘離權)
중국 후한(後漢)의 도사. 도교 팔선(八仙) 중 한 사람으로, 원래는 장군이었으나 토번(吐藩)을 정벌하다가 실패하고 도망쳐 도사가 되었다고 함. 일설에는 당(唐) 나라의 도사로, 여암(呂巖)과 동시대 인물이라고도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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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
중국 남북조시대 동진(東晉)의 승려인 도안(道安)이 작성한 최초의 불교경전 목록(佛敎經典目錄). 1권. 전체 경전을 8록(錄)으로 분류하여 639부(部) 886권(卷)을 수록하였다고 하는데, 산일되어 전하지 않음.
374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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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춘(鍾離春)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 선왕(宣王)의 부인. 어진 덕의 소유자였으나 단지 모습이 추했다는 이유로 황제(黃帝)의 왕비였던 모모(嫫母)와 더불어 세인들의 비난과 조롱을 당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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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린(宗璘)
고려 인종(仁宗)~명종(明宗) 때의 승려. 인종의 아들로, 화엄종(華嚴宗)으로 출가하여 국태사(國泰寺)ㆍ중흥사(重興寺)ㆍ부석사(浮石寺) 등의 주지를 지내고 승통(僧統)이 됨. 입적한 뒤 국사에 추증되었으며, 용인의 서봉사(瑞峯寺) 터에 비(碑)가 남아 있음.
1127~1179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종교인>승려ㅣ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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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림(宗林)
고려 말 조선 초의 승려. 자은종(慈恩宗)의 도승통(都僧統)을 지냈고, 《목은고(牧隱藁)》와 《복재집(復齋集)》에 그와 관련된 시가 실려 있음.
1333~?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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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鬷明)
중국 춘추전국시대 정(鄭) 나라의 대부. 외모가 매우 못생겼으나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어 진(晉) 나라의 대부 양설힐(羊舌肹)이 그의 목소리만 듣고도 종명임을 간파했다는 고사가 전해짐.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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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병(宗炳)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송(宋) 나라의 은자(隱者). 금(琴)ㆍ서(書)ㆍ화(畫)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렸고, 노장학(老莊學)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형산(衡山)에 은거하면서 조정에서 불러도 일체 응하지 않았음.
375~443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ㅣ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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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산(鍾山)
중국 강소성(江蘇省) 강녕현(江寧縣) 동북쪽에 있는 산 이름.
중국 , 지명>자연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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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산서원(鍾山書院)
조선 현종(顯宗) 때 함경도 종성(鍾城)에 건립된 서원. 1666년(현종 7)에 창건되고 1686년(숙종 12)에 사액됨. 후에 회령서원(會寧書院)을 흡수 통합하였으며, 기준(奇遵)ㆍ유희춘(柳希春)ㆍ정엽(鄭曄) 등 11인을 배향함.
1666 한국>조선후기 , 함경도>종성 , 유적>건물>서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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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선정(種善亭)
조선 명종(明宗) 때 경상도 봉화(奉化)에 건립된 정자. 기근 때 빈민을 구제한 금응석(琴應石)의 선행을 기리기 위하여 1554년(명종 9)에 마을 주민들이 창건하고, 이황(李滉)이 친필 현판을 써 주었다 함.
155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봉화 , 유적>건물>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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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宗臣)
중국 명(明) 나라 세종(世宗) 때의 문신ㆍ문인. 복건 참의(福建參議)ㆍ제학 부사(提學副使) 등을 지냈으며, 전칠자(前七子)의 복고설(復古說)을 계승하여 왕세정(王世貞)ㆍ이반룡(李攀龍) 등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고문사설(古文辭說)을 제창하여 후칠자로 불림.
1525~1560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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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從諗)
중국 당(唐) 나라의 승려.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법제자로,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 있으면서 불교를 전양(傳揚)하는 데 힘을 다하여 당시에 조주문풍(趙州門風)이라 불림. 승려 하나가 조주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이 무엇이냐고 묻자, 뜰 앞에 있는 잣나무[庭前栢樹子]라고 대답한 유명한 일화가 있음.
375~443 중국>당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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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옥(種玉)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이르는 말. 《수신기(搜神記)》에 중국 한(漢) 나라 사람인 양옹백(楊雍伯)이 밭에 돌을 심고 옥(玉)을 캐어, 아내를 얻었다는 데서 유래함.
중국>전한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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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요(鍾繇)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 문제(文帝) 때의 문신ㆍ서예가. 호소(胡昭)와 함께 유덕승(劉德升)에게 글씨를 배우고, 해서(楷書)로 발전해가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함으로써 왕희지(王羲之)와 더불어 ‘종왕(鍾王)’으로 병칭됨.
151~230 중국>삼국시대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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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사(從容祠)
조선 인조(仁祖) 때 전라도 금산(錦山)에 건립된 사당.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들을 기리기 위해 1647년(인조 25)에 창건하고 1663년(현종 4)에 사액되었으며, 고경명(高敬命)ㆍ조헌(趙憲) 등 10인을 배향함.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에 속함.
1647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금산 , 유적>건물>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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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지(宗義智)
일본 도산시대(桃山時代)의 문신. 대마도주(對馬島主)로서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豐臣秀吉)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옴. 가신(家臣) 유천조신(柳川調信)의 보필로 풍신수길의 심복이 됨.
일본>도산시대 , 일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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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기(鍾子期)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 사람.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잘 이해하였는데,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고 종신토록 연주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음률(音律)을 이해하는 자 없음을 한탄하였다고 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예술인>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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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국(左^國)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학자인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국어(國語)》를 함께 부르는 말. 중국의 대표적인 두 역사서를 말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문헌>기타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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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마(左^馬)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학자인 좌구명(左丘明)과 전한(前漢)의 학자인 사마천(司馬遷)을 함께 부르는 말.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를 저술한 두 학자를 말함.
중국>전한ㅣ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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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유(左^柳)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학자인 좌구명(左丘明)과 당(唐) 나라의 시인인 유종원(柳宗元)을 함께 부르는 말. 중국의 역사와 문장에 대표적인 문인ㆍ학자를 말함.
중국>당ㅣ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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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명(左丘明)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학자. 태사(太史)를 지냈으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ㆍ《국어(國語)》를 저술하였다고 전해짐. 그의 사적(事跡)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이설(異說)이 분분함.
?~B.C.450?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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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리공신(佐理功臣)
조선 성종(成宗) 2년에 왕을 잘 보필하였다는 공으로 내린 훈호(勳號). 네 등급으로 나누어 신숙주(申叔舟)ㆍ한명회(韓明澮) 등 총 75명에게 내렸으나, 후에 훈구(勳舊) 세력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부작용을 초래함.
1471 한국>조선전기 , 법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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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명공신(佐命功臣)
조선 태종(太宗) 1년에 제2차 왕자(王子)의 난(亂)을 평정하고 태종의 즉위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린 훈호(勳號). 네 등급으로 나누어 이저(李佇)ㆍ이거이(李居易) 등 총 47명에게 내림. 후에 태종의 왕권강화책에 따라 일부가 제거됨.
1401 한국>조선전기 , 법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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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사(左思)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문인. 10년의 노력 끝에 위(魏)ㆍ촉(蜀)ㆍ오(吳) 세 나라의 도읍을 노래한 〈삼도부(三都賦)〉를 완성했는데 당시 문단의 영수였던 장화(張華)에게 절찬을 받아 유명해짐.
250?~305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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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座右銘)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인 최원(崔瑗)이 지은 잠명(箴銘). 형인 최장(崔章)이 피살되자 원수를 갚고 도망쳤다가 사면된 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하여 지었다 하며, 5언(言) 20구(句) 100자(字)로 이루어짐.
중국>후한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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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공신(佐翼功臣)
조선 세조(世祖) 1년에 단종(端宗)을 퇴위시키고 세조를 즉위하게 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세 등급으로 나누어 신숙주(申叔舟)ㆍ한명회(韓明澮) 등 총 44명에게 내렸으며, 사육신(死六臣) 사건 이후 41명으로 축소됨.
1455 한국>조선전기 , 법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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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자(左慈)
중국 후한(後漢) 때의 도술가(道術家). 도술을 배워 육갑(六甲)ㆍ신술(神術)에 정통함. 조조(曹操)가 농어(鱸魚)가 먹고 싶다고 하자 대야 물에서 송강(松江)의 농어를 낚아 올렸는데 이를 두려워한 조조가 죽이려 하자 양이 되어 양의 무리 속에 들어가서 잡지 못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