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
정묘시집(丁卯詩集) - 정묘집(丁卯集)
중국 당(唐) 나라의 문인ㆍ문신인 허혼(許渾)의 시집. 2권. 책명은 허혼이 윤주(潤州)의 정묘교(丁卯橋) 촌사에서 시작(詩作)을 한 데서 붙여진 명칭이며, 총 50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만당(晩唐)의 시국을 우려하는 내용임.
중국>당 , 중국 , 문헌>서명
-
정묘일기(丁卯日記) - 덕계일기(德溪日記)
조선 명종(明宗) 때의 학자ㆍ문신인 오건(吳健)이 조정(朝廷)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기록한 일기.
한국>조선전기 , 문헌>서명
-
정묘지란(丁卯之亂) - 정묘호란(丁卯胡亂)
조선 인조(仁祖) 5년에 후금(後金)의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후금 사이의 전쟁. 인조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으로 달아난 이괄(李适) 잔당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발발하여, 두 달여 간의 싸움 끝에 화의(和議)를 맺고 끝남.
1627 한국>조선후기 , 사건>전쟁
-
정묘지변(丁卯之變) - 정묘호란(丁卯胡亂)
조선 인조(仁祖) 5년에 후금(後金)의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후금 사이의 전쟁. 인조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으로 달아난 이괄(李适) 잔당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발발하여, 두 달여 간의 싸움 끝에 화의(和議)를 맺고 끝남.
1627 한국>조선후기 , 사건>전쟁
-
정묘지역(丁卯之役) - 정묘호란(丁卯胡亂)
조선 인조(仁祖) 5년에 후금(後金)의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후금 사이의 전쟁. 인조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으로 달아난 이괄(李适) 잔당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발발하여, 두 달여 간의 싸움 끝에 화의(和議)를 맺고 끝남.
1627 한국>조선후기 , 사건>전쟁
-
정무(貞武) - 기건(奇虔)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학행으로 이름이 높아 세종 때 포의(布衣)로 발탁되어 지평(持平)에 제수됨.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끝까지 절개를 지킴.
?~1460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고양 , 인명>관인>문신
-
정무(貞武)@박호문 - 박호문(朴好問)
조선 세종(世宗)~단종(端宗) 때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1419년(세종 1)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삭주 절제사(朔州節制使) 등을 지냄. 1452년(단종 즉위년)에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가 되어 부임하였으나 이징옥(李澄玉)에게 살해됨.
?~145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관인>무신
-
정묵(靜默) - 박제인(朴齊仁)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최영경(崔永慶)ㆍ하항(河沆)ㆍ김면(金沔) 등과 함께 수학함. 군위 현감(軍威縣監)ㆍ제용감 판관(濟用監判官)을 지냄.
1536~161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안 , 인명>관인>문신
-
정문(貞文) - 홍석(洪錫)@조선후기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태백산(太白山) 춘양(春陽)에 은거하여 강흡(姜洽) 등과 함께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불림. 후에 세자익위사 사어(世子翊衛司司禦)를 지냄.
1604~1680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정문(貞文)@오내 - 오내(吳萊)
중국 원(元) 나라의 시인.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춘시(春試)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이후 심뇨산(深裊山)에 은거하며 독서와 저술에 전념함. 저서로는 제자인 송렴(宋濂)이 펴낸 《연영오선생집(淵潁吳先生集)》과 《맹자제자열전(孟子弟子列傳)》등이 있음.
1297~1340 중국>원 , 중국 , 인명>문사>문인
-
정문간(鄭文簡) - 정온(鄭蘊)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다가 유배됨. 병자호란 때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사직한 후 덕유산(德裕山)에 들어가 은거함.
1569~164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거창ㅣ경상도>안음 , 인명>관인>문신
-
정문봉(鄭文峯) - 정유일(鄭惟一)@1533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한 뒤 대사간(大事諫)ㆍ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냄. 시부(詩賦)에 뛰어났으며, 성리학에 있어서는 퇴계설(退溪說)을 발전시킴.
1533~157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
-
정문익(鄭文翼) - 정광필(鄭光弼)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이조 판서(吏曹判書) 정난종(鄭蘭宗)의 아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영의정(領議政)으로 조광조(趙光祖) 등을 구하려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좌천되었으며, 후에 다시 영의정에 오름.
1462~1538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회덕 , 인명>관인>문신
-
정문장(鄭文莊) - 정경세(鄭經世)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냄. 주자학에 본원을 두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음.
1563~163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정문청(鄭文淸) - 정철(鄭澈)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 본관은 연일(延日). 판관(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沈)의 아들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인(門人). 예조 판서(禮曹判書)ㆍ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함.
1536~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창평ㅣ경기도>강화ㅣ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정문충(鄭文忠) - 정몽주(鄭夢周)
고려 공민왕(恭愍王)~공양왕(恭讓王)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오부학당(五部學堂)ㆍ향교를 세워 교육 진흥을 꾀하고 유학을 진흥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닦음. 친원(親元) 정책에 반대하고 끝까지 고려를 지키고자 함.
1337~1392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영천(永川)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정문헌(鄭文獻) - 정여창(鄭汝昌)
조선 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ㆍ학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종성(鍾城)으로 유배가서 죽음.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經史)에 통달함.
1450~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하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정민(正愍) - 여대방(呂大防)
중국 송(宋) 나라 인종(仁宗)~철종(哲宗) 때의 문신. 동생인 여대림(呂大臨) 등과 함께 도(道)를 논하고 예(禮)를 연구하여 향약(鄕約)을 제정함.
1027~1097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정민(貞愍)@이종 - 이종(李踵)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종친. 태종(太宗)의 네 번째 서자인 근녕군(謹寧君) 이농(李襛)의 아들로, 태종의 세 번째 서자인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에게 출계함.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1506년(연산군 12) 아들들과 함께 죽음을 당함.
?~150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종친
-
정민(貞愍) - 송현수(宋玹壽)
조선 단종(端宗) 때의 문신. 단종의 장인. 본관은 여산(礪山). 1457년(세조 3)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사사된 뒤 주살(誅殺)됨.
?~145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여산 , 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