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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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왕(惠王)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魏) 나라의 제후.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피폐해지자 수도를 대량(大梁)으로 옮기고 국호를 ‘양(梁)’으로 고쳤으며, 요(堯)ㆍ순(舜)의 인의정치(仁義政治)를 표방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왕실>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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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왕(惠王)@백제
백제 제28대 국왕. 재위 598~599. 성왕(聖王)의 둘째 아들로 형인 위덕왕(威德王)의 뒤를 이어 즉위함. 백제의 국세(國勢)가 점차 쇠약해지던 시기임.
?~599 한국>백제 , 충청도>부여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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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왕(惠王)@주
중국 주(周) 나라의 제17대 왕. 재위 B.C.677~B.C.652. 장왕(莊王)의 아들이자 양왕(襄王)의 아버지. 즉위 후 오대부(五大夫)가 난을 일으키자 도망쳤다가 정(鄭) 여공(厲公) 등의 도움을 받아 ‘자퇴(子頹)의 난(亂)’을 평정하고 복귀함.
?~B.C.652 중국>주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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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慧遠)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승려.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염불 수행의 결사(結社)인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한 뒤 산문(山門)을 나서지 않고 도중(徒衆)과 정토 수행(淨土修行)에 전념하였으며, 중국 불교를 학문적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함.
334~416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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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적(慧寂)
중국 당(唐) 나라 무종(武宗)~희종(僖宗) 때의 선승(禪僧). 위산 영우(潙山靈祐)의 제자로, 앙산(仰山)을 중심으로 법을 선양하여 위앙교(潙仰敎)를 성립시킴.
807~883 중국>당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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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옹주(惠靜翁主)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둘째 서녀. 경빈박씨(敬嬪朴氏) 소생으로, 당성위(唐城尉) 홍려(洪礪)에게 출가함.
151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왕실>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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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惠帝)@명
중국 명(明) 나라 제2대 황제. 재위 1398~1402. 태조(太祖)의 손자로, 아버지 의문태자(懿文太子)가 병사하자 황태손에 책봉됨. 즉위 후 황제의 권위를 높이고 제후 세력의 약화를 꾀하였으나, 뒤에 성조(成祖)가 된 주체(朱棣)에게 제위를 빼앗김.
1377~1402 중국>명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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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惠帝)@전한
중국 전한(前漢)의 제2대 황제. 재위 B.C.195~B.C.188. 고조(高祖)의 맏 아들로, 즉위 초에 조참(曹參)을 승상으로 발탁하여 인정(仁政)을 베풀었으나,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어머니인 여후(呂后)에게 실권을 빼앗기자 울분을 품고 죽음.
B.C.210~B.C.188 중국>전한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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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惠帝)@남북조(晉)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제2대 황제. 재위 290~306. 무제(武帝)의 아들. 성품이 어리석어 통치력을 상실한 탓에 팔왕(八王)의 난(亂)과 오호(五胡)의 발호를 야기하여, 서진(西晉)의 멸망 원인을 제공함.
259~306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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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제(慧齊)
중국 송(宋) 나라의 승려. 대혜선사(大慧禪師) 종고(宗杲)의 스승으로, 동산(東山)의 혜운사(慧雲寺)에서 수행할 때 그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내림.
중국>송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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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惠宗)
고려 제2대 왕. 재위 943~945. 태조(太祖)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장화왕후(莊和王后). 지용(智勇)이 뛰어나 후백제(後百濟)를 칠 때 큰 공을 세웠으나, 즉위 후에는 왕권이 미약하여 왕규(王規)에게 암살 위협을 당하기도 함.
914~945 한국>고려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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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惠眞)
고려 말~조선 초의 승려. 권근(權近)의 《양촌집(陽村集))에 그의 당호(堂號)에 대한 기문(記文)이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충청도>충주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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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침(惠忱)
조선 전기의 승려. 일찍이 산수(山水)를 주유하던 박은(朴誾)을 만나 벗으로 사귀고, 함께 천마산(天磨山)을 유람함. 박은의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에 그에게 부친 시가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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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홍(惠洪)
중국 송(宋) 나라 휘종(徽宗)~흠종(欽宗) 때의 승려.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에 속하며 시승(詩僧)으로 유명함. 저서로 《임간록(林間錄)》ㆍ《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ㆍ《냉재야화(冷齋夜話)》등이 있음.
1071~1128 중국>송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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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惠化門)
조선 태조(太祖) 때 건립한 사소문(四小門)의 하나. 숙정문(肅靖門)과 흥인지문(興人之門) 사이에 있던 동북간문(東北間門). 양주(楊州)ㆍ포천(抱川)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함.
1396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유적>시설>성,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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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虎)
호랑이. 민속(民俗)에서 잡귀(雜鬼)를 물리치고 효(孝)와 보은(報恩)의 동물로 묘사되는 등 신수(神獸)로 일컬어짐.
자연물>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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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곤(虎^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호변(李虎變)과 문인인 이곤변(李鯤變) 형제를 함께 부르는 말.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진주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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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보(戶^保)
조선 전기의 군대편성법인 호수(戶首)와 보인(保人)을 함께 부르는 말. 정규 군인인 호수와 호수의 경제를 책임지는 보인을 말함.
한국>조선전기 , 법제>기타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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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虎^惺)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문경호(文景虎)와 박성(朴惺)을 함께 부르는 말. 정철(鄭澈)을 간흉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에 대해 무고한 사람을 말함.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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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지(湖^蘇^芝)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시인인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ㆍ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ㆍ지천(芝川) 황정욱(黃庭彧)을 함께 부르는 말. 해동강서시파(海東江西詩派) 또는 관각삼걸(館閣三傑)이라 불렀는데, 관료문인(官僚文人)으로서 시에 뛰어난 사람을 말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동래ㅣ서울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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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손(胡^孫)
중국 송(宋) 나라 인종(仁宗) 때의 학자인 호원(胡瑗)과 손복(孫復)을 함께 부르는 말. 송 나라 초기 송학(宋學)의 선도자로 훌륭한 스승을 말함.
중국>송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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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 채염(蔡琰)이 지은 고악부(古樂府)의 금곡 가사(琴曲歌辭). 십대명곡(十大名曲)의 하나로, 흉노(匈奴)에게 납치되었다가 후에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낳은 아이들과 생이별한 채염 자신의 구슬픈 신세를 읊음.
중국>후한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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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인(胡居仁)
중국 명(明) 나라의 학자. 스승 오여필(吳與弼)의 실천궁행(實踐躬行)의 학문을 이은 숭인학파(崇仁學派)의 제일인자로, 정주학(程朱學)을 독수(獨修)하고 《거업록(居業錄)》을 저술하였으며, 죽은 뒤 문묘(文廟)에 배향됨.
1434~1484 중국>명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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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鎬京)
중국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서북쪽에 있던 고대 도시 이름. 주(周) 무왕(武王)이 즉위한 후 풍(豐) 땅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으며, 낙읍(洛邑)과 함께 서주(西周)시대의 양대 도성(兩大都城)으로 일컬어짐.
중국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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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虎溪三笑)
중국 남북조시대에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인 혜원(慧遠)이 도잠(陶潛)ㆍ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할 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결에 사찰 앞의 호계(虎溪)를 건넜으므로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 종교를 초월하여 의기투합함을 뜻함.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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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서원(虎溪書院)@안동
조선 선조(宣祖) 때 경상도 안동(安東)에 건립한 서원. 1576년(선조 9)에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창건되고, 1676년(숙종 2)에 호계서원(虎溪書院)이라 사액되었으며, 이황(李滉)ㆍ유성룡(柳成龍)ㆍ김성일(金誠一)을 배향함.
157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유적>건물>서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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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서원(虎溪書院)@과천
조선 숙종(肅宗) 때 경기도 과천(果川)에 건립된 서원. 1681년(숙종 7)에 창건되고, 조종경(趙宗敬)ㆍ조속(趙涑)을 배향함.
1681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과천 , 유적>건물>서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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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곡집(壺谷集)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ㆍ문인인 남용익(南龍翼)의 시문집. 18권 9책. 목판본. 저자의 아들 남정중(南正重)이 유문(遺文)을 수집, 편차하여 1695년(숙종 21)경에 이인환(李寅煥)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것으로 추정됨.
1695?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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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공(壺公)
중국 후한(後漢) 때의 선인(仙人). 저자에서 약을 팔다가 장이 파하면 문득 병 속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저자의 아전인 비장방(費長房)이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 별천지(別天地)가 있었다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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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광(胡廣)
중국 후한(後漢) 안제(安帝)~영제(靈帝) 때의 문신. 태부(太傅) 등을 지내고, 여섯 명의 황제를 보좌한 나라의 원로(元老)로서 모든 정무(政務)를 잘 처리하여 ‘중용(中庸)의 재상’으로 일컬어짐.
91~17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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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굉(胡宏)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 양시(楊時)ㆍ이정(二程)의 이학(理學)을 계승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오봉학파(五峯學派)를 창시하였으며, 주희(朱熹)ㆍ장식(張栻)ㆍ여조겸(吕祖謙) 등에게 영향을 미침.
1106?~1162?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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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당(虎丘堂)
조선 후기의 승려. 양성당(養性堂) 혜능(慧能)의 스승. 홍여하(洪汝河)의 《목재집(木齋集)》에 그에 대한 애사(哀詞)가 실려 있음.
한국>조선후기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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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일록(虎口日錄)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권두문(權斗文)이 쓴 일기 형식의 책. 저자가 임진왜란 때 창평 군수(昌平郡守)를 지내다가 왜적에게 붙잡히자 적진에서 정세를 탐지하여 관군(官軍)에게 알렸는데, 이때의 일을 기록한 것임.
1592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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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답문(湖南答問)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인 호대시(胡大時)가 지은 책. 저자가 주희(朱熹)와 장식(張栻)이 호남(湖南)의 악록서원(岳麓書院)에서 강학할 때 참여하여 학문을 토론한 내용을 저술한 책으로 추정됨.
중국>송 , 중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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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록(湖南義錄)
조선 선조(宣祖)~효종(孝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안방준(安邦俊)의 저서. 임진왜란 때 호남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최경회(崔慶會)ㆍ정운(鄭運)ㆍ백광언(白光彥) 등 16인에 대한 기록으로, 1626년(인조 4)에 간행함.
1626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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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대시(胡大時)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호굉(胡宏)의 아들이며, 장식(張栻)의 사위이자 제자로, 장식이 죽은 뒤 진부량(陳傅良)에게 수학하고, 주희(朱熹)와 교유하였으며, 《호남답문(湖南答問)》을 저술함.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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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대원(胡大原)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호인(胡寅)의 아들이며, 호굉(胡宏)의 조카로, 호굉의 학설을 계승하여 주희(朱熹)ㆍ장식(張栻)과 논쟁하였으며, 《백봉문답(伯逢問答)》을 저술함.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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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생(胡母生)
중국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의 문신ㆍ학자. 공양고(公羊高)의 《춘추(春秋)》에 대한 전술(傳述)을 스승인 공양수(公羊壽)와 함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으로 정리하여 편찬함.
중국>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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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방평(胡方平)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동몽정(董夢程)에게 역학(易學)을 전수받고 심귀요(沈貴瑤)를 스승으로 섬겨 《주역(周易)》에 정통하였으며, 저서에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이 있음.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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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병문(胡炳文)
중국 원(元) 나라의 학자. 《주역(周易)》에 정통하고, 주희(朱熹)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저서에 《주역본의통석(周易本義通釋)》ㆍ《사서통(四書通)》ㆍ《운봉집(雲峰集)》이 있음.
1250~1333? 중국>원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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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고(狐射姑)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 나라의 대부. 호언(狐偃)의 아들. 문무(文武)와 지용(智勇)을 겸비한 유장(儒將)으로서 태사(太師)를 지냄. 양공(襄公) 때 가국(賈國)에 봉해졌으며, 가씨(賈氏)의 이시조(二始祖)가 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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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공신(扈聖功臣)
조선 선조(宣祖) 37년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義州)까지 호종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세 등급으로 나누어 이항복(李恒福)ㆍ정곤수(鄭崐壽) 등 총 86인에게 내림.
1604 한국>조선후기 , 법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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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胡昭)
중국 후한(後漢)~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은자ㆍ서화가. 재능과 지혜가 제갈량(諸葛亮)에 못지않았으나 깊은 산 속에 은거하여 평생 벼슬하지 않았으며, 글씨에도 뛰어나 종요(鍾繇)와 명성을 나란히 함.
161~250 중국>삼국시대ㅣ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ㅣ인명>예술인>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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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胡實)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ㆍ학자. 호원(胡瑗)의 아들이자, 호굉(胡宏)의 사촌동생으로, 주희(朱熹)ㆍ장식(張軾)과 논쟁하였으며, 장사랑(將仕郞) 등을 역임함.
1136~1173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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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국(胡安國)
중국 송(宋) 나라 철종(哲宗)~고종(高宗) 때의 문신ㆍ학자. 정이(程頤)를 사숙하고 정문(程門)의 학문을 규명하여 무이학파(武夷學派)를 창시하였으며, 《춘추(春秋)》를 20년 동안 연구하여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을 저술함.
1074~1138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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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약해(胡若海)
중국 원(元) 말~명(明) 초의 문신. 당시 군웅(群雄)의 한 사람이던 방국진(方國珍)이 명주 사도(明州司徒)로 있을 적에 그의 사신이 되어 공민왕(恭愍王) 때 고려에 옴.
중국>명ㅣ중국>원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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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언(狐偃)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 나라 대부. 문공(文公)의 외숙으로, 문공이 공자(公子) 시절 여희(驪姬)의 견제를 받아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할 때 충심으로 그를 보필하여 마침내 임금에 오르게 하였으며. 문공이 패자(覇者)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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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胡泳)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주희(朱熹)의 제자로, 주희로부터 학문이 견실하고 굳건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저서에 《논어연설(論語衍說)》이 있으나, 세상에 전하지 않음.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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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胡瑗)
중국 송(宋) 나라 인종(仁宗) 때의 문신ㆍ학자. 정이(程頤)의 스승. 범중엄(范仲淹)ㆍ손복(孫復)과 함께 '송초(宋初)의 세 선생'으로 일컬어지는 송학(宋學)의 선도자로, 태상박사(太常博士) 등을 지내고, 많은 제자를 배출함.
993~1059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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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유용(胡惟庸)
중국 원(元) 순제(順帝)~명(明) 태조(太祖) 때의 문신. 원 나라 말기에 명 태조에게 인정을 받아 벼슬하여 명 나라 때 좌승상(左丞相)까지 올랐으나 모역죄(謀逆罪)로 처형됨. 이후 그의 죄에 연좌되어 당여(黨與) 3만여 명이 처형됨.
?~1380 중국>명ㅣ중국>원 , 중국 , 인명>관인>문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