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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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楊炯)
중국 당(唐) 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ㆍ문인. 영천 영(盈川令) 등을 지냄. 육조시(六朝詩)의 영향을 받아 율시(律詩)에 능하고, 왕발(王勃)ㆍ노조린(盧照隣)ㆍ낙빈왕(駱賓王)과 함께 ‘초당사걸(初唐四傑)’로 불림.
650~693? 중국>당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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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림(楊惠琳)
중국 당(唐) 나라의 절도사(節度使). 806년(헌종 원화 원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무신 유창예(劉昌裔)에게 설복(說服)당함.
중국>당 , 중국 , 인명>기타인명>역적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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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梁琥)
조선 세조(世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의 아들이며, 종실 양록부정(楊麓副正) 이수(李粹)의 장인으로, 낭천 현감(狼川縣監)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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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楊鎬)
중국 명(明) 나라 말기의 무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경략조선군무사(經略朝鮮軍務使)가 되어 참전했다가 울산(蔚山) 도산성(島山城) 싸움에서 대패하여 파면됨.
?~1629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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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羊祜)
중국 남북조시대 서진(西晉)의 무신. 상서좌복야(尚書左伏射)로 형주(荊州)에 주둔하던 10년 동안 둔전을 실시하고 군량을 비축하는 등 오(吳) 나라를 치기 위한 준비를 했으나 실현하지 못함.
221~278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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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거사비(楊鎬去思碑)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출전한 중국 명(明) 나라 장군 양호(楊鎬)의 무훈을 기리기 위하여 서울에 건립한 비. 양호 장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4기의 비 중 하나.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유적>기타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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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梁鴻)
중국 후한(後漢) 장제(章帝) 때의 은사. 아내 맹광(孟光)과 함께 패릉산(覇陵山)에 은거하였는데, 장제가 그를 찾자 성명을 바꾸고 오(吳) 나라로 떠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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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楊洪)@조선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지낸 양사형(楊士衡)의 아버지로, 1540년(중종 35) 별시(別試)에 급제하였으며,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순창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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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楊洪)@명
중국 명(明) 나라 성조(成祖)~대종(代宗) 때의 무신.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성조를 따라 북정(北征)에 참가하였으며, 선부총병(宣府摠兵) 등을 역임함.
1381~1451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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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택(梁弘澤)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정희보(鄭希輔)의 문인(門人)으로, 남계서원(灆溪書院) 운영의 재정(財政)을 담당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함양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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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楊華)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명장(名將)인 양대안(楊大眼)의 아들. 선무영황후(宣武靈皇后)와 정을 통한 뒤 화를 염려하여 양(梁) 나라로 달아남. 황후가 그를 그리워하며 〈양백화가(楊白華歌)〉를 지음.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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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陽貨)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의 가신(家臣). 계평자(季平子)를 섬기다가 그가 죽은 후 권력을 장악하여 전횡하였으며, 삼환(三桓)을 제거하려다 실패한 후 제(齊) 나라를 거쳐 진(晉) 나라로 도망쳐 조둔(趙盾)에게 의지하고, 조간자(趙簡子)의 모사(謀士)가 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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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도(楊花渡)
서울과 경기도 금천(衿川)에 걸쳐 있던 나루 이름. 서울에서 강화(江華)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한강 조운(漕運)의 중심 지역 중 하나로서, 현재 서울 마포구(麻浦區)에 속함.
경기도>금천ㅣ서울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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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소록(養花小錄)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인 강희안(姜希顔)의 원예서. 필사본. 1권 1책. 1474년(성종 5)에 동생 강희맹(姜希孟)이 유고를 모아 서문을 씀. 꽃과 나무의 재배법과 이용법, 품격과 의미, 상징성 등을 논한 양화서(養花書)의 기본이 되는 책으로서 《진산세고(晉山世稿)》 권4에 실림.
한국>조선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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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황후(梁皇后)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의 후비. 호강대족(豪强大族) 출신으로, 양기(梁冀)의 누이동생. 순제 사후 충제(冲帝)ㆍ질제(質帝)ㆍ환제(桓帝) 때까지 태후로서 정권을 장악하여 양씨 외척이 크게 발호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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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楊繪)
중국 금(金) 나라의 학사(學士). 옥전현(玉田縣) 서쪽에 자신의 호를 따 채정교(采亭橋)를 놓음.
중국>금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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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후(楊厚)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판관(判官) 양자순(楊子淳)의 아버지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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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흔(梁忻)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 본관은 남원(南原)으로,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양희(梁喜)의 형. 오건(吳健)ㆍ노진(盧禛) 등과 교유함.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남원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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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梁喜)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노정(盧禎)ㆍ이후백(李後白)과 함께 도의와 학문을 닦아 영남(嶺南)의 삼걸(三傑)이라 일컬어짐.
1515~1581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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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부(梁希傅)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남원(南原)으로, 돈용교위(敦勇校尉) 양충(梁沖)의 아들. 1513년(중종 8)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전주 , 인명>문사>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