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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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휴노인(恩休老人) - 김정국(金正國)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동생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탈관직되었다가 복직됨.
1485~1541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고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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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휴자(恩休子) - 김정국(金正國)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동생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탈관직되었다가 복직됨.
1485~1541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고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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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휴탑하(恩休榻下) - 김정국(金正國)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며 김안국(金安國)의 동생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탈관직되었다가 복직됨.
1485~1541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고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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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귀(乙貴) - 정을귀(鄭乙貴)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 정흥인(鄭興仁)의 아버지로, 종부시 영(宗簿寺令) 등을 지냄.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하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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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란(乙卯倭亂) - 을묘왜변(乙卯倭變)
조선 명종(明宗) 때 왜구(倭寇)가 전라남도 영암(靈岩)ㆍ강진(康津)ㆍ진도(珍島) 일대에 침입한 사건. 비변사(備邊司)가 상설기관으로서 위치를 굳히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됨.
1555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진도ㅣ전라도>영암ㅣ전라도>강진 , 사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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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번(乙蕃) - 남을번(南乙蕃)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문신. 고려 때 밀직부사(密直府使)를 지냈고, 조선 건국 후 검교시중(檢校侍中)이 됨.
1320~1395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의령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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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난(乙巳難)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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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란(乙巳亂)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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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변란(乙巳變亂)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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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옥(乙巳獄)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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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옥사(乙巳獄事)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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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 - 속무정보감(續武定寶鑑)
조선 성종(成宗) 때부터 명종(明宗) 초기까지의 전란과 분쟁을 진압한 전말을 기록한 책. 8권 4책. 목활자본. 1548년(명종 3) 왕명으로 홍언필(洪彦弼)ㆍ윤인경(尹仁鏡)ㆍ정순붕(鄭順朋) 등이 편찬함.
154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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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지난(乙巳之難)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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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지란(乙巳之亂)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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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지변(乙巳之變)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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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지옥(乙巳之獄)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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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지화(乙巳之禍)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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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화(乙巳禍) -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명종(明宗) 즉위년(1545)에 소윤(小尹)이 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士林)이 화를 당한 사건. 외척(外戚)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발생함.
1545 한국>조선전기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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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乙沚) - 하을지(河乙沚)
고려 공민왕(恭愍王)~우왕(禑王) 때의 문신.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개경(開京)을 수복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왜구(倭寇)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여 문책을 당함.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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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진(乙珍) - 남을진(南乙珍)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정몽주(鄭夢周)ㆍ길재(吉再)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선의 태조(太祖)가 사천백(沙川伯)을 봉했으나 적성(積城)의 감악산(紺嶽山) 석굴에 들어가 은거함.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적성ㅣ경기도>양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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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진(乙珍)@이을진 - 이을진(李乙珍)
고려 우왕(禑王)~조선 태종(太宗) 때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는 공을 세웠고, 최영(崔瑩) 등과 함께 요동정벌에 참가하였으며, 우왕의 복위를 꾀하던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됨.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전라도>장수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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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충(乙忠) - 표을충(表乙忠)
고려 말의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표광원(表光遠)의 아들로, 군기시 소윤(軍器寺少尹) 등을 지냄. 조선 개국 후 세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상주(尙州)의 백화산(白華山)에 은거함.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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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愔) - 왕음(王愔)
고려 제11대 문종(文宗)의 아들. 어머니는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이며, 순종(順宗)ㆍ선종(宣宗)ㆍ숙종(肅宗)ㆍ대각국사(大覺國師)의 동생.
?~1086 한국>고려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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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하(陰^何) - 하^음(何^陰)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 나라의 시인인 하손(何遜)과 음갱(陰鏗)을 함께 부르는 말. 시(詩)에 뛰어난 사람을 가리킴.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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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군(陰君) - 음장생(陰長生)
중국 후한(後漢) 때의 도사. 화제음황후(和帝陰皇后)의 증조. 마명생(馬明生)의 제자로, 그에게 《태청신단경(太淸神丹經)》을 전수받고, 청성산(靑城山)에서 수도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함.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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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백(飮伯) - 국미록(麴美祿)
술의 다른 이름. 조선 전기의 문인 최연(崔演)이 지은 가전(假傳) 〈국수재전(麴秀才傳)〉의 주인공. 국매(麴酶)와 곡숙현 미씨(穀熟縣米氏) 사이에 태어나 임금의 총애를 얻어 황봉(黃封)의 호를 받았으나, 신하들의 무함(誣陷)으로 주천후(酒泉侯)에 봉해져 은둔함.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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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백(飮伯)@국생 - 국생(麴生)
술의 의인화된 명칭. 누룩[麴]을 원료로 하여 만드는 술에 학생ㆍ학자를 뜻하는 생(生) 자를 붙여 입전(立傳)한 데서 유래한 명칭.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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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봉(陰峯) - 아산(牙山)
충청도 서북부에 있는 고을 이름. 고려 초기에는 인주(仁州)ㆍ아주(牙州)라 불렀으며, 이순신(李舜臣)의 영정(影幀)을 모신 현충사(顯忠祠)가 있음.
충청도>아산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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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시부(陰時夫) - 음유우(陰幼遇)
중국 송(宋) 말~원(元) 초의 학자. 송 나라가 멸망하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여 《운부군옥(韻府群玉)》등의 저서를 남김.
중국>원ㅣ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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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애(陰崖)@이자 - 이자(李耔)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사림파(士林派)의 한 사람으로 도학정치의 이상을 추구했으며, 온건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참화를 면함. 파직된 후 음성(陰城) 등지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씀.
1480~1533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충주ㅣ충청도>음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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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애(陰崖) - 이은(李誾)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이극기(李克基)의 아들로, 학식과 지조가 있어 별과(別科)에 추천되었으며, 고원 군수(高原郡守)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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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애선생집(陰崖先生集) - 음애집(陰崖集)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이자(李耔)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후손 이도흥(李道興)과 이이장(李彝章)이 수집ㆍ편찬하여 1754년(영조 30)에 간행함. 김재로(金在魯)의 서문과 권만(權萬)의 발문이 실려 있음.
1754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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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여화(陰麗華) - 광렬음황후(光烈陰皇后)
중국 후한(後漢) 제1대 황제인 광무제(光武帝)의 황후. 41년에 황후로 봉해지고, 아들로 명제(明帝)가 된 유장(劉莊), 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 광릉왕(廣陵王) 유형(劉荊), 임준공(臨淮公) 유형(劉衡), 낭야왕(琅邪王) 유경(劉京)이 있음.
4~6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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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잠(陰岑) - 아산(牙山)
충청도 서북부에 있는 고을 이름. 고려 초기에는 인주(仁州)ㆍ아주(牙州)라 불렀으며, 이순신(李舜臣)의 영정(影幀)을 모신 현충사(顯忠祠)가 있음.
충청도>아산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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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陰州) - 음죽(陰竹)
경기도 동남부에 있던 옛 고을 이름. 경기도 내륙지방의 교통요지로서 도로가 발달하였고, 천민천(天民川) 유역은 기름진 평야로 쌀이 많이 생산됨. 현재는 경기도 이천시(利川市)에 편입됨.
경기도>음죽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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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죽야(陰竹埜) - 음유우(陰幼遇)
중국 송(宋) 말~원(元) 초의 학자. 송 나라가 멸망하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여 《운부군옥(韻府群玉)》등의 저서를 남김.
중국>원ㅣ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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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중선(飮中仙) - 노삼(魯參)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 판관(判官)을 역임했고 《홍무정운(洪武正韻)》을 수정하는데 참여함.
한국>조선전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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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황후(陰皇后) - 화제음황후(和帝陰皇后)
중국 후한(後漢)의 제4대 황제인 화제(和帝)의 비(妃). 음장생(陰長生)의 증손으로, 학문을 즐겨 숭상했다고 함.
?~102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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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후(陰后) - 광렬음황후(光烈陰皇后)
중국 후한(後漢) 제1대 황제인 광무제(光武帝)의 황후. 41년에 황후로 봉해지고, 아들로 명제(明帝)가 된 유장(劉莊), 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 광릉왕(廣陵王) 유형(劉荊), 임준공(臨淮公) 유형(劉衡), 낭야왕(琅邪王) 유경(劉京)이 있음.
4~64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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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각로(泣閣老) - 윤두수(尹斗壽)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황(李滉)ㆍ이중호(李仲虎)의 문인(門人)으로, 종계변무(宗系辨誣)에 힘써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록되고, 건저문제(建儲問題)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두 차례의 왜란 때 공을 세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됨.
1533~1601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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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령(泣嶺) - 서읍령(西泣嶺)
경상도 영해(寧海)의 동쪽 40리 지점에 있는 고개 이름. 고을의 입구였으나 사신의 행차가 처음으로 고개를 넘을 때 흉사가 일어난다는 속설이 있자, 경상 감사(慶尙監事) 손순효(孫舜孝)가 그 괴이함을 깨뜨리고자 파괴현(破怪峴)이라고 고침.
경상도>영해 , 지명>자연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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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루(挹婁) - 말갈(靺鞨)
한반도 동북부 및 만주(滿洲) 일대에 거주하던 종족, 또는 그 부족들의 총칭(總稱). 시대에 따라 각기 읍루(挹婁)ㆍ물길(勿吉)ㆍ말갈(靺鞨) 등으로 불렸으며, 여진(女眞)의 전신(前身).
중국>당ㅣ중국>수 , 중국 , 인명>집단>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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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청(挹淸)@박사종 - 박사종(朴嗣宗)
조선 전기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영동(永同)의 초강서원(草江書院)에 배향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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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청(挹淸) - 김부의(金富儀)@조선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1525~158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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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청당(挹淸堂) - 박사종(朴嗣宗)
조선 전기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영동(永同)의 초강서원(草江書院)에 배향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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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청정(挹淸亭)@김부의 - 김부의(金富儀)@조선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1525~158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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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청주인(挹淸主人) - 김부의(金富儀)@조선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1525~158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안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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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挹翠) - 박은(朴誾)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사사됨. 시문(詩文)에 능하여 해동(海東)의 강서파(江西派)로 일컬어짐.
1479~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고령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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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집(挹翠集) -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조선 연산군 때의 시인ㆍ학자인 박은(朴誾)의 시문집(詩文集). 1514년(중종 9)에 친구인 이행(李荇)이 유고(遺稿)를 수집하여 초간(初刊)함.
1514 한국>조선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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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헌(挹翠軒) - 박은(朴誾)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사사됨. 시문(詩文)에 능하여 해동(海東)의 강서파(江西派)로 일컬어짐.
1479~150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고령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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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헌집(挹翠軒集) -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조선 연산군 때의 시인ㆍ학자인 박은(朴誾)의 시문집(詩文集). 1514년(중종 9)에 친구인 이행(李荇)이 유고(遺稿)를 수집하여 초간(初刊)함.
1514 한국>조선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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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학헌(挹鶴軒) - 박성범(朴成範)
조선 광해군(光海君)~효종(孝宗) 때의 학자. 본관은 고령(高靈). 이황(李滉)에게 청운(靑雲)이란 소자(小字)를 받았으며, 수직(壽職)으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냄.
1568~165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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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凝)@최응 - 최응(崔凝)
고려 전기의 문신. 개성최씨(開城崔氏)의 시조인 최우달(崔佑達)의 아들로,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내봉경(內奉卿)에 오르고,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추증됨.
898~932 한국>고려전기 , 경기도>개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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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凝) - 이응(李凝)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1566년(명종 21)에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지냄.
1499~?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전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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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應)@강응 - 강응(姜應)
조선 전기의 유학(幼學). 본관은 진주(晉州)로, 우승지(承政院右承旨)를 지낸 강삼(姜參)의 아버지.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진주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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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應) - 허응(許應)
고려 공민왕(恭愍王)~조선 태종(太宗) 때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고려 말에 이성계(李成桂)의 신진세력에 가담하여 시폐(時弊) 혁신과 전제(田制) 개혁을 주장하고, 조선 개국 후 배불정책(排佛政策)과 과부의 개가(改嫁) 금지 등을 주장함.
?~1411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양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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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應)@홍응 - 홍응(洪應)
조선 문종(文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홍심(洪深)의 아들.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고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ㆍ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좌의정 등을 지냄. 문장과 글씨에 능했음.
1428~1492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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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膺)@후한 - 이응(李膺)@후한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문신. 당고지화(黨錮之禍) 때 두무(竇武)와 함께 환관(宦官)을 숙청하려다가 환관 조절(曹節)에게 피살됨. 공융(孔融)의 집안과 친하게 지냈으며, 청렴하여 당시 청년 관리들이 그를 알게 되는 것을 등용문(登龍門)이라 부름.
110~169 중국>후한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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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膺)@조선 - 이응(李膺)@조선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조선 개국 후 제2차 왕자의 난에 기여한 공으로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됨. 태종(太宗)의 척불정책(斥佛政策)을 크게 돕고, 계미자(癸未字) 주조에도 공헌함.
1365~1414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영천(永川)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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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膺) - 심응(沈膺)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좌의정(左議政) 심정(沈貞)의 아버지로 풍산군(豊山君)에 봉해짐.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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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태(膺^泰) - 이^곽(李^郭)
중국 후한(後漢)의 대신인 이응(李膺)과 학자인 곽태(郭泰)를 함께 부르는 말. 인품이 고결한 명사(名士)를 가리킴.
중국>후한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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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개(應凱) - 신응개(申應凱)
조선 전기의 문신. 약포(藥圃) 정탁(鄭琢)과 교유하였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름.
한국>조선후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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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개(應漑) - 송응개(宋應漑)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좌참찬(左參贊) 송기수(宋麒壽)의 아들. 선조 때 동서분당(東西分黨) 이후 동인(東人)의 중진으로 활약하면서 허봉(許篈) 등과 함께 이이(李珥)를 탄핵하다 회령(會寧)에 유배됨.
1536~1588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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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거(應擧) - 양사준(楊士俊)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양희수(楊希洙)의 아들로, 형 양사언(楊士彦), 동생 양사기(楊士奇)와 더불어 문명(文名)을 날려 당시에 중국의 소순(蘇洵)ㆍ소식(蘇軾)ㆍ소철(蘇轍)에 비유되었으며, 정랑(正郞)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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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견(應見) - 유운룡(柳雲龍)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유성룡(柳成龍)의 형이며 이황(李滉)의 문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부임하여 백성들의 생업을 보호하는 데 힘썼으며, 효성이 지극함.
1539~160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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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卿)@조응경 - 조응경(趙應卿)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조수만(趙壽萬)의 아들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조부인 조금호(趙金虎) 슬하에서 자라면서 지극한 효행으로 이름을 떨침.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냄.
1487~154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함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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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卿)@정몽열 - 정몽열(丁夢說)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무안(務安). 유학 정윤호(丁潤瑚)의 아들로, 1513년(중종 8)에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광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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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卿) - 김서성(金瑞星)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안(扶安). 1544년 중종 비가 죽자 사재감 정(司宰監正)이 되어 일을 처리함.
1497~1548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부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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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卿)@성몽정 - 성몽정(成夢井)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성담년(成聃年)의 아들로,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와 교유함.
1471~151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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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慶)@김응경 - 김응경(金應慶)
조선 후기의 유학. 정인홍(鄭仁弘)ㆍ윤감(尹堪)ㆍ정이길(鄭以吉) 등과 교유함. 《내암집(來庵集)》의 〈윤감전(尹堪傳)〉에 그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음.
한국>조선후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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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慶)@송응경 - 송응경(宋應慶)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은진(恩津).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송인수(宋麟壽)의 아들이며, 단양수(丹城守) 이진(李鎭)과 지퇴당(知退堂) 이정형(李廷馨)의 장인.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은진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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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慶)@이응경 - 이응경(李應慶)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이복흥(李復興)의 아들로, 봉산 군수(鳳山郡守)로 있을 때 명(明) 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는 직무를 수행함.
1513~1569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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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경(應慶) - 유승선(柳承善)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강음 현감(江陰縣監)을 지낸 유정(柳貞)의 아들로, 1546년(명종 1)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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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계(凝溪) - 곽한(郭瀚)
조선 명종(明宗) 때의 유학. 본관은 현풍(玄風).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봉화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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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공(應供)@아라한 - 아라한(阿羅漢)
불교에서 열반(涅槃) 또는 깨달음에 이른 성자(聖者)를 가리키는 말. 원래는 석가(釋迦)의 가까운 제자 16명을 지칭하였으나 뒤에는 500명까지 늘어났으며, 후대에는 개인적인 깨달음에 만족한 소승(小乘)의 수행자들을 가리키기도 함.
사상>술어>핵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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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공(應供) - 석가(釋迦)
B.C.6~B.C.4세기경 인도(印度)에서 활동한 불교의 창시자. 정반왕(淨飯王)의 아들로, 29세에 출가하여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후 인도 각지를 다니며 포교 활동을 함.
B.C.563?~B.C.483? 고대 , 기타지역 , 인명>기타인명>성현ㅣ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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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공(應恭) - 조응공(趙應恭)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선조(宣祖) 때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낸 조원(趙瑗)의 생부로,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임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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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관(應寬) - 조응관(趙應寬)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임천(林川). 선조(宣祖) 때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낸 조원(趙瑗)의 아버지.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임천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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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應榘) - 신응구(申應榘)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동지중추부사 신벌(申橃)의 아들로, 성혼(成渾)ㆍ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함. 인조반정 후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 등을 지냄.
1553~1623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남포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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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應求) - 진준경(陳俊卿)
중국 송(宋) 고종(高宗)~효종(孝宗) 때의 재상. 진복(陳宓)의 아버지.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 등을 거쳐 소사(少師)ㆍ위국공(魏國公)으로 치사함.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에 관해 직언을 잘함.
1113~1186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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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應龜) - 여응구(呂應龜)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주세붕(周世鵬)의 문인. 성균관 유생 시절 보우(普雨)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불교진흥책을 강력히 비판하였으며, 학유(學諭)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서 후학을 양성함.
1523~157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금산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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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국(應國) - 안응국(安應國)
조선 전기의 양인. 이산해(李山海)가 유배된 평해(平海)의 황보리(黃保里)에 살던 사람으로, 이산해의 《아계유고(鵝溪遺稾)》에, 그의 전기(傳記)인 〈안주부전(安主簿傳)〉이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강원도>평해 , 인명>기타인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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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귀(應龜) - 김응귀(金應龜)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로, 공조 정랑 (工曹正郞) 김광우(金光佑)의 아들. 1579년(선조 12)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 등을 지내고, 유덕종(柳德種)과 교유함.
1533~?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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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규(應圭) - 유응규(庾應圭)
고려 의종(毅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음보(蔭補)로 내시가 되었으나 무신의 난 이후 세운 여러 공으로 관직이 공부 시랑(工部侍郞)에 이름.
1131~1175 한국>고려후기 , 전라도>무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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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규(應奎)@안응규 - 안응규(安應奎)
조선 전기의 유학. 향교(鄕校)의 훈도(訓導)를 역임하였으며,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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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규(應奎)@장응규 - 장응규(張應奎)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지례(知禮)로, 울진 현령(蔚珍縣令)을 지낸 장지효(張至孝)의 아들.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장수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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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규(應奎) - 윤응규(尹應奎)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상주 목사(尙州牧師) 윤탕(尹宕)의 아들이자 죽재(竹齋) 윤인함(尹仁涵)의 아버지로, 포천 현감(抱川縣監)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파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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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규(應奎)@김응규 - 김응규(金應奎)
조선 성종(成宗) 때의 유학. 성종의 신임을 받은 김응기(金應箕)의 아우로, 평안도 향공(鄕貢)으로 삼과(三科)에서 장원하였으나 진사 회시(進士會試)의 과장(科場)에서 죽음.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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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규(應奎)@황응규 - 황응규(黃應奎)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황사우(黃士祐)의 아들이며, 주세붕(周世鵬)ㆍ이황(李滉)의 문인. 호조(戶曹)ㆍ형조(刑曹)ㆍ공조(工曹)의 정랑(正郞)과 좌랑(左郞) 등을 지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곡을 군량으로 바치고 의병을 모아 출전함.
1518~159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풍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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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期)@송응기 - 송응기(宋應期)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송귀수(宋龜壽)의 아들이며, 병조 좌랑(兵曹佐郞) 송방조(宋邦祚)와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의 아버지로, 의빈부 도사(儀賓府都事)를 지냄.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은진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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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期)@이명생 - 이명생(李命生)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과 교유하였으며, 첨정(僉正)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전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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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期) - 이정(李挺)@고려
고려 충숙왕(忠肅王)~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중대광(重大匡) 이계함(李季瑊)의 아들로,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ㆍ형부 상서(刑部尙書) 등을 지냈고,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내불당(內佛堂)을 감역함.
1297~1361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진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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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祺)@장응기 - 장응기(張應祺)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임진왜란 때 초토사(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의 휘하에서 활약하고, 정유재란 때는 방어사 곽재우(郭再祐) 휘하에 참여함.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책록되고, 연안(延安) 현충사(顯忠祠)에 배향됨.
1556~1630 한국>조선후기 , 황해도>연안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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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祺) - 민응기(閔應祺)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광해군(光海君)의 사부(師傅)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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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箕) - 김응기(金應箕)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성종의 신임이 두터워 10여 년 동안 강연(講筵)을 맡음.
1457~151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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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箕)@양응기 - 양응기(梁應箕)
조선 중중(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장자(長子)로,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냈음.
1506~?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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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기(應麒) - 서응기(徐應麒)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당성(唐城).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아들로, 장례원 사의(掌隸院司議)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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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길(應吉) - 홍인우(洪仁祐)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홍덕연(洪德演)의 맏아들. 서경덕(徐敬德)ㆍ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심경(心經)》ㆍ《근사록(近思錄)》ㆍ《중용(中庸)》ㆍ《대학(大學)》에 전심하고,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음.
1515~155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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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길(應吉)@이유경 - 이유경(李有慶)@이수원의아들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광주(廣州).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 이수원(李守元)의 아들.
1497~1558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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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길(應吉)@이몽룡 - 이몽룡(李夢龍)
조선 전기의 유학. 송인(宋寅)과 교유하였으며, 송인이 그의 상심정(賞心亭)이란 정자를 두고 지은 시가 《이암유고(頤庵遺稿)》에 보임.
한국>조선전기 , 인명>문사>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