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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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길상(妙吉祥) - 문수(文殊)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보살(菩薩) 중의 하나. 제불(諸佛)의 지혜를 맡은 보살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왼쪽에 위치하며, 오른쪽의 보현(普賢)과 함께 석가를 양쪽에서 보필하는 협시보살(脇侍菩薩)로 일컬어짐.
고대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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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뇨(貓尿) - 주(酒)
술. 누룩을 빚어 만든 음료의 총칭(總稱). 전설상에 두강(杜康)과 의적(儀狄)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함.
물품>식약품>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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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련(妙蓮)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교 대승경전(大乘經典)의 한 가지.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짐. 기원 전후에 서북 인도에서 만들어졌으며,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을 주요 내용으로 28개의 품(品)으로 구성됨.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이 가장 널리 보급됨.
고대 , 기타지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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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련경(妙蓮經)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교 대승경전(大乘經典)의 한 가지.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짐. 기원 전후에 서북 인도에서 만들어졌으며,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을 주요 내용으로 28개의 품(品)으로 구성됨.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이 가장 널리 보급됨.
고대 , 기타지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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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명존자(妙明尊者) - 만항(萬恒)
고려 충렬왕(忠烈王)~충숙왕(忠肅王) 때의 승려. 본관은 웅진(熊津)으로 수선사(修禪社)의 십세(十世). 원오화상(圓悟和尙)에게 배우고 낭월사(朗月寺)ㆍ운흥사(雲興寺)ㆍ선원사(禪源寺) 등의 주지를 지냄.
1259~1319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공주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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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경(妙法蓮經)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교 대승경전(大乘經典)의 한 가지.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짐. 기원 전후에 서북 인도에서 만들어졌으며,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을 주요 내용으로 28개의 품(品)으로 구성됨.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이 가장 널리 보급됨.
고대 , 기타지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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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화경(妙法華經)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교 대승경전(大乘經典)의 한 가지.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짐. 기원 전후에 서북 인도에서 만들어졌으며,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을 주요 내용으로 28개의 품(品)으로 구성됨.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이 가장 널리 보급됨.
고대 , 기타지역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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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엄(妙嚴) - 자초(自超)
고려 충혜왕(忠惠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고승.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움. 나옹(懶翁) 혜근(惠勤)의 수제자로 조선 개국 후 왕사(王師)가 됨.
1327~1405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합천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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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엄존자(妙嚴尊者) - 자초(自超)
고려 충혜왕(忠惠王)~조선 태조(太祖) 때의 고승.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움. 나옹(懶翁) 혜근(惠勤)의 수제자로 조선 개국 후 왕사(王師)가 됨.
1327~1405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합천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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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음보살(妙音菩薩) - 문수(文殊)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보살(菩薩) 중의 하나. 제불(諸佛)의 지혜를 맡은 보살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왼쪽에 위치하며, 오른쪽의 보현(普賢)과 함께 석가를 양쪽에서 보필하는 협시보살(脇侍菩薩)로 일컬어짐.
고대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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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응(妙應) - 혼구(混丘)
고려 충렬왕(忠烈王)~충숙왕(忠肅王) 때의 승려. 일연(一然)의 제자로, 충숙왕 때 왕사(王師)가 되었으며 《가송잡저(歌頌雜著)》 등을 저술함.
1251~1322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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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잡화(妙雜花) - 화엄경(華嚴經)
불교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經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르침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인정받는 방대한 분량의 대승불교(大乘佛敎) 경전임.
고대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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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卯地) - 허엽(許曄)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허균(許筠)의 아버지로, 명종 때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원을 청하고 허자(許磁) 등의 무죄를 논하다가 파직됨. 선조 때 김효원(金孝元)과 함께 동인(東人)의 영수(領袖)가 되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됨.
1517~1580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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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희(妙喜) - 종고(宗杲)
중국 송(宋) 나라의 승려. 속성은 해씨(奚氏). 임제종(臨濟宗) 승려로 동산(東山) 혜운사(慧雲寺)의 혜제(慧齊)에게서 득도(得道)하여 구족계를 받고, 원오선사(圓悟禪師)의 법을 전해 받음.
?~1163 중국>송 , 중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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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楙) - 김무(金楙)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김징(金澄)의 아들. 1718년(숙종 44) 금산 태수(金山太守)가 되어 조위(曺偉)의 문집인 《매계집(梅溪集)》을 간행함.
1655~?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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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武) - 두무(竇武)
중국 후한(後漢) 환제(桓帝)의 비(妃)인 두후(竇后)의 아버지. 진번(陳蕃)과 함께 국정을 보필하였으며, 환제가 죽은 뒤 영제(靈帝)를 옹립하여 이응(李膺)ㆍ두밀(杜密)과 함께 환관 조절(曹節)ㆍ왕보(王甫) 등을 죽이려다 발각되어 자결함.
?~168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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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畝) - 김무(金畝)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고령김씨의 시조인 김남득(金南得)의 아들로, 공양왕(恭讓王) 때 간관(諫官)을 지냄.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상도>고령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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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繆) - 허경종(許敬宗)
중국 당(唐) 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 간신 이의부(李義府)와 함께 황후 왕씨를 폐위시키고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황후에 책봉되는 데 기여함. 예부 상서(禮部尙書)ㆍ시중(侍中) 등을 지냄.
592~672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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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여(武^呂) - 여^무(呂^武)
중국 전한(前漢) 고조(高祖)의 황후인 여후(呂后)와 당(唐) 나라 고종(高宗)의 황후인 측천무후(則天武后)를 함께 부르는 말. 황제를 대신해 정권을 휘두르며 권세를 누렸던 두 황후를 말함.
중국>당ㅣ중국>전한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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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탕(武^湯) - 탕^무(湯^武)
중국 은(殷) 나라를 세운 탕(湯)과 주(周) 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을 함께 부르는 말. 각각 하(夏) 나라의 걸(桀)과 은(殷) 나라의 주(紂)를 정벌하고 새로 건국한 고사에서, 무도한 왕을 정벌하고 정당한 혁명을 일으킨 성군(聖君)을 가리킴.
중국>주ㅣ중국>은 , 중국 , 사상>술어>관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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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강(武康) - 무왕(武王)@백제
백제 제30대 왕. 재위 600~641. 법왕(法王)의 아들이며, 의자왕(義慈王)의 아버지. 즉위 후 신라를 자주 공격하는 한편 고구려의 남진(南進)을 견제하였으며, 정복전쟁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킴.
?~641 한국>백제 , 충청도>부여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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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강(無疆) - 이무강(李無疆)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함. 소윤(小尹) 일파 이기(李芑)의 사주를 받아 구수담(具壽聃)ㆍ허자(許磁)ㆍ송순(宋純)ㆍ이준경(李浚慶) 등을 모함하여 유배보냈으나 그 일이 발각되자 죄를 받고 유배지에서 죽음.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양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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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武擧) - 무과(武科)
조선시대에 무관(武官)을 선발하기 위해 실시한 과거. 대개 3년마다 한 번씩 식년(式年)에 실시하였으며, 초시(初試)ㆍ복시(覆試)ㆍ전시(殿試)의 3단계를 거쳐 선발함.
1408 한국>조선시대 , 법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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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武經) - 무경칠서(武經七書)
중국의 병법(兵法)에 관한 일곱 가지 책. 군사를 훈련시키고 전략을 세우는 등 용병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책으로, 《손자(孫子)》ㆍ《오자(吳子)》ㆍ《사마법(司馬法)》ㆍ《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ㆍ《위료자(尉繚子)》ㆍ《삼략(三略)》ㆍ《육도(六韜)》를 가리킴.
1083 중국>송 , 중국 , 문헌>기타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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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茂卿) - 진백(陳柏)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선비가 공부하고 수양하는 절차를 말한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저술함.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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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懋公) - 이적(李勣)
중국 당(唐) 나라 고조(高祖)~고종(高宗) 때의 명장. 요동도 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總官)으로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 안시성(安市城)을 침공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가 재차 침공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킴. 이정(李靖)과 함께 ‘영위(英衛)’로 병칭됨.
594~669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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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懋功) - 권적(權勣)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교(權僑)의 아들로,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ㆍ강화 부사(江華府使)를 지냄.
1470~1531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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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武恭) - 복지겸(卜智謙)
고려의 개국공신(開國功臣). 태봉(泰封)의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있다가 궁예(弓裔)가 민심을 잃자, 918년에 배현경(裵玄慶)ㆍ신숭겸(申崇謙)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움. 면천복씨(沔川卜氏)의 시조.
한국>고려전기ㅣ한국>통일신라 , 충청도>면천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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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無功) - 성세적(成世勣)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의 아들로, 정언(正言)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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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無功)@왕적 - 왕적(王績)
중국 수(隋)~당(唐) 나라의 시인ㆍ문신. 문중자(文中子) 왕통(王通)의 동생. 비서성 정자(秘書省正字)ㆍ문하성 대조(門下省待詔) 등을 지낸 후 관직을 그만두고 노장(老莊)에 심취함.
585~644 중국>당ㅣ중국>수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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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선생(武功先生) - 소병(蘇昞)
중국 송(宋) 철종(哲宗) 때의 문신ㆍ학자. 처음에 장재(張載)에게 배웠으나 나중에 정호(程顥)ㆍ정이(程頤)의 문인이 되었으며,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역임함.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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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務觀) - 육유(陸游)
중국 송(宋) 나라 고종(高宗)~영종(寧宗) 때의 문신ㆍ문인. 보모각 대제(寶謨閣待制) 등을 지냄. 조국을 침략한 금(金) 나라에 대한 철저한 항쟁을 주장하고, 시를 통해 그 분노를 표출하는 한편 일상생활의 자적함을 동시에 표현함.
1125~1210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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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懋官) - 이덕무(李德懋)
조선 정조(正祖) 때의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박제가(朴齊家)ㆍ유득공(柳得恭)ㆍ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어 문명을 떨침. 명(明)과 청(淸) 나라의 학문과 고증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가져 실질적으로는 북학을 함.
1741~17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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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无咎)@한원길 - 한원길(韓元吉)
중국 송(宋) 나라의 문신. 화정(和靖) 윤돈(尹焞)의 문인(門人)으로, 일찍이 여조겸(呂祖謙)과 더불어 덕청(德淸)의 자상사(慈相寺)에서 강독하고 이부 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냄.
1118~1187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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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无咎) - 조보지(晁補之)
중국 송(宋) 나라 신종(神宗)~휘종(徽宗) 때의 문신ㆍ시인ㆍ학자. 문동(文同)의 친구이자 소식(蘇軾)의 제자로, 진관(秦觀)ㆍ장뢰(張耒)ㆍ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일컬어짐. 저서로 《계륵집(鷄肋集)》등이 있음.
1053~1110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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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無咎) - 백비화(白賁華)
고려 신종(神宗)~고종(高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포(藍浦)로, 백광신(白光臣)의 아들. 1198년(신종 1)에 춘관시(春官試)에 급제하여, 내시(內侍)로 오래 재직하고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ㆍ경산 부사(京山府使) 등을 지냄. 저서로 《남양시집(南陽詩集)》이 있음.
1180~1224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남포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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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거사(無垢居士) - 장구성(張九成)
중국 송(宋) 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냈으나 진회(秦檜)에게 거슬려 파직당함. 종고(宗杲)의 가르침을 받아 깨우침을 얻고, 종지(宗旨)를 보는 눈이 분명하다는 평을 얻음.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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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자(無垢子) - 장구성(張九成)
중국 송(宋) 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냈으나 진회(秦檜)에게 거슬려 파직당함. 종고(宗杲)의 가르침을 받아 깨우침을 얻고, 종지(宗旨)를 보는 눈이 분명하다는 평을 얻음.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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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칭(無垢稱) - 유마힐(維摩詰)
석가(釋迦)의 속제자(俗弟子). 인도 비사리국(毗舍離國)의 장자(長者)로, 속가에 있으면서 보살(菩薩)의 행업을 닦았으며, 그 수행이 높아서 불자제로도 미칠 수 없었다고 함.
고대 , 기타지역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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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無宮) - 무궁화(無窮花)
아욱과의 낙엽관목(落葉灌木). 꽃이 끊임없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데서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하며, 산울타리 등에 널리 이용됨.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근역(槿域)’에 관한 기록이 있음.
자연물>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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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無窮) - 무궁화(無窮花)
아욱과의 낙엽관목(落葉灌木). 꽃이 끊임없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데서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하며, 산울타리 등에 널리 이용됨.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근역(槿域)’에 관한 기록이 있음.
자연물>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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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無宮花) - 무궁화(無窮花)
아욱과의 낙엽관목(落葉灌木). 꽃이 끊임없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데서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하며, 산울타리 등에 널리 이용됨.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근역(槿域)’에 관한 기록이 있음.
자연물>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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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舞宮花) - 무궁화(無窮花)
아욱과의 낙엽관목(落葉灌木). 꽃이 끊임없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데서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하며, 산울타리 등에 널리 이용됨.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근역(槿域)’에 관한 기록이 있음.
자연물>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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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無極)@일연 - 일연(一然)
고려 고종(高宗)~충렬왕(忠烈王) 때의 승려. 고종 때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구산문 사선(九山門四選)의 으뜸되어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고, 충렬왕 때 국존(國尊)으로 책봉됨. 제자로 혼구(混丘)ㆍ죽허(竹虛)가 있고, 대표적 저서로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유명함.
1206~1289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경주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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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無極) - 비무기(費無忌)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의 태자소부(太子少傅). 평왕(平王)에게 오자서(伍子胥)의 아버지인 오사(伍奢)와 형 오상(伍尙)을 모함하여 처형하도록 함.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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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無極)@주돈이 - 주돈이(周敦頤)
중국 송(宋) 나라의 유학자.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의 스승으로,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함. 저서에 《태극도설(太極圖說)》ㆍ《통서(通書)》등이 있음.
1017~1073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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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노인(無極老人) - 혼구(混丘)
고려 충렬왕(忠烈王)~충숙왕(忠肅王) 때의 승려. 일연(一然)의 제자로, 충숙왕 때 왕사(王師)가 되었으며 《가송잡저(歌頌雜著)》 등을 저술함.
1251~1322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종교인>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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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도(無極圖) - 태극도(太極圖)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송(宋) 나라 때의 도사인 진단(陳摶)이 처음 만들었다는 태극(太極)의 도식(圖式). 충방(种放)ㆍ목수(穆修) 등에게 차례로 전승되어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로 이어졌다 함.
중국>송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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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옹(無極翁) - 주돈이(周敦頤)
중국 송(宋) 나라의 유학자.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의 스승으로,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함. 저서에 《태극도설(太極圖說)》ㆍ《통서(通書)》등이 있음.
1017~1073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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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無己)@진사도 - 진사도(陳師道)
중국 송(宋) 나라의 문인. 시로 인해서 증공(曾鞏)과 소식(蘇軾)을 알게 되었으며, 소식의 문인 가운데에서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황진(黃陳)이라 병칭됨.
1053~1101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