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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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友臣) - 김우신(金友臣)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안락당(顔樂堂) 김흔(金訢)의 아버지. 성종의 잠저 시절 사부(師傅)로서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제수받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냄.
1424~1510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연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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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庵)@홍언충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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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庵) - 권장(權檣)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명종(明宗) 때 원상(院相)을 지낸 권벌(權橃)의 동생.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
1489~151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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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庵)@조인규 - 조인규(趙仁奎)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세보(趙世輔)의 아들로, 형조 참의(刑曹參議)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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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庵)@김주 - 김주(金澍)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明) 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했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음. 문장이 뛰어나고 초서를 잘 씀.
1512~156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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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寓菴)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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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尤庵) - 송시열(宋時烈)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룬 주자학(朱子學)의 대가로, 기해예송(己亥禮訟) 때 남인(南人)과 대립하고, 후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서 왕세자 책봉에 반대하다가 사사(賜死)됨.
1607~1689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회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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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尤菴) - 송시열(宋時烈)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룬 주자학(朱子學)의 대가로, 기해예송(己亥禮訟) 때 남인(南人)과 대립하고, 후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서 왕세자 책봉에 반대하다가 사사(賜死)됨.
1607~1689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회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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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愚菴) - 조욱(趙昱)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조광조(趙光祖)ㆍ김식(金湜)의 문인(門人)으로, 시문(詩文)ㆍ서화(書畫)에 능하고, 서경덕(徐敬德)ㆍ이황(李滉)ㆍ김안국(金安國) 등과 교유하였으며, 장수 현감(長水縣監) 등을 지냄.
1498~155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천ㅣ경기도>삭녕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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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牛巖) - 서예원(徐禮元)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무신. 본관은 이천(利川). 김해 부사(金海府使)를 지내고 진주 목사(晉州牧使)로 있다가 왜적(倭敵)이 침입(侵入)하여 성(城)이 함락되면서 순절(殉節)함.
?~1593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이천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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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遇岩) - 이열도(李閱道)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이굉(李宏)의 아들로, 종조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함. 1576년(선조 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조 좌랑(禮曹佐郞) 등을 지냄.
1538~1591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예천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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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거사(寓菴居士) - 홍언충(洪彦忠)
조선 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홍귀달(洪貴達)의 셋째 아들로, 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지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간언 상소를 올려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남. 문장과 글씨에 뛰어남.
1473~150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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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계녀서(尤庵戒女書) - 계녀서(戒女書)
조선 후기의 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출가하는 딸에게 교훈으로 삼도록 지어준 글. 한글 필사본. 1책. 조선시대 사대부가(士大夫家) 부녀자들의 행동에 관한 사회적 규범을 보여줌.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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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문집(尤庵文集) - 우암집(尤庵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의 시문집. 167권 63책. 활자본. 1717년(숙종 43) 왕명에 의해 처음으로 간행된 후 증보ㆍ간행되다가, 1787년(정조 11) 《송자대전(宋子大全)》으로 집대성됨.
171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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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선생문집(尤庵先生文集) - 우암집(尤庵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의 시문집. 167권 63책. 활자본. 1717년(숙종 43) 왕명에 의해 처음으로 간행된 후 증보ㆍ간행되다가, 1787년(정조 11) 《송자대전(宋子大全)》으로 집대성됨.
171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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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선생유고(寓庵先生遺稿) - 우암유집(寓庵遺集)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인 김주(金澍)의 시문집. 7권 1책. 목판본. 1789년(정조 13) 6대손 김래(金䅘)에 의해 간행되고, 이복원(李福源)의 서문과 김래의 발문이 실려 있음.
1789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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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선생유집(寓庵先生遺集) - 우암유집(寓庵遺集)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인 김주(金澍)의 시문집. 7권 1책. 목판본. 1789년(정조 13) 6대손 김래(金䅘)에 의해 간행되고, 이복원(李福源)의 서문과 김래의 발문이 실려 있음.
1789 한국>조선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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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유고(尤庵遺稿) - 우암집(尤庵集)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의 시문집. 167권 63책. 활자본. 1717년(숙종 43) 왕명에 의해 처음으로 간행된 후 증보ㆍ간행되다가, 1787년(정조 11) 《송자대전(宋子大全)》으로 집대성됨.
1717 한국>조선후기 , 서울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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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언확(禹彦確) - 우상(禹鏛)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우인손(禹仁孫)의 아들.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편찬에 참여하고,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 등을 지냄.
1507~1560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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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흥(虞永興) - 우세남(虞世南)
중국 당(唐) 나라 태종(太宗) 때의 문신ㆍ문인ㆍ서예가. 고야왕(顧野王)에게 수학하고,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익혀 구양순(歐陽詢) 등과 함께 당 나라 초기의 사대(四大) 서예가로 불렸으며, 특히 해서(楷書)에 뛰어남. 태종의 신임을 받아 자주 담론을 나눔.
558~638 중국>당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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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옹(宇顒) - 김우옹(金宇顒)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속자치통감강목(續自治通鑑綱目)》을 찬하고, 부제학(副提學)ㆍ이조 참판(吏曹參判) 등을 지냄.
1540~160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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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옹(尤翁) - 송시열(宋時烈)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룬 주자학(朱子學)의 대가로, 기해예송(己亥禮訟) 때 남인(南人)과 대립하고, 후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서 왕세자 책봉에 반대하다가 사사(賜死)됨.
1607~1689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회덕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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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옹(愚翁) - 성희안(成希顔)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박원종(朴元宗) 등과 함께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주도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었고, 주청사(奏請使)로 명(明) 나라에 가서 반정의 당위성을 설명함. 영의정(領議政) 등을 지냄.
1461~1513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녕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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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옹(愚翁)@이희안 - 이희안(李希顔)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김안국(金安國)의 문인(門人)으로,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조식(曺植)과 교우하며 학문을 연마함.
1504~155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초계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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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옹(牛翁) - 성혼(成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백인걸(白仁傑)의 문인으로, 이황(李滉)을 사숙하고 이이(李珥)와 도의지교를 맺음. 서인(西人) 집권 후 이조 참판 등을 지내고, 이이와 6년에 걸쳐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에 대해 논변함.
1535~1598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파주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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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옹(祐翁) - 장수희(張壽禧)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인동(仁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배향되었음.
1516~158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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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禹王) - 우(禹)
중국 최초의 국가를 세운 하(夏) 나라의 왕. 순(舜) 임금의 왕위를 계승하여 8년간 재위 중에 하 왕조의 기초를 세우고, 수토(水土)를 잘 다스렸으나 과로로 죽음.
중국>하 , 중국 , 인명>왕실>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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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요(虞姚) -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황제. 요(堯) 임금의 선양(禪讓) 후 사흉(四凶)인 곤(鯀)ㆍ공공(共工)ㆍ환두(驩兜)ㆍ삼묘(三苗) 등을 주벌하고 천하를 잘 다스려 태평시대를 이룬 성군(聖君)으로 칭송받음.
고대 , 중국 , 인명>기타인명>기타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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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宇容) - 김우용(金宇容)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삼척 부사(三陟府使) 김희삼(金希參)의 아들로, 감찰(監察)ㆍ밀양 부사(密陽府使) 등을 지냄.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김우옹(金宇顒)의 형.
1538~160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성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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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정(友于亭) - 이유온(李有溫)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이승원(李承元)의 아들로, 이천 도호부사(利川都護府使)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성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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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윤(于胤) - 안계송(安繼宋)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음직(蔭職)으로 돈녕부 직장(敦寧府直長)을 지냄. 남효온(南孝溫)의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 행적이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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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윤(遇贇) - 선우윤(宣遇贇)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보성(寶城). 통례문 통찬(通禮門通贊) 선상진(宣尙進)의 아들로, 1513년(중종 8)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보성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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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곡(羽衣曲) -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중국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선악(仙樂) 이름. 현종이 꿈에 방사(方士)와 월궁(月宮)에서 놀다가 그 음악을 듣고 돌아와 지었다는 설과, 양경충(楊敬忠)이 지어 바쳤다는 설과, 양경술(楊敬述)이 지었다는 설 등이 있음.
중국>당 , 중국 , 문헌>작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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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무(羽衣舞) -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
중국 당(唐) 현종(玄宗)이 꿈에 본 달나라 선녀들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춤 이름. 양귀비(楊貴妃)가 잘 추었다 함.
중국>당 , 중국 , 기타>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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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愚移) - 우공이산(愚公移山)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말. 전설에, 북산(北山)의 우공(愚公)이 집 앞을 가로막은 태항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을 옮기기로 맹세하고 흙을 퍼 나르자, 천제(天帝)가 과아씨(夸蛾氏)의 두 아들을 시켜 산을 옮겨 주었다 함.
고대 , 중국 , 사상>술어>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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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자(虞夷子) - 안정복(安鼎福)
조선 영조(英祖)~정조(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이익(李瀷)의 문인으로, 실학(實學)을 연구하여 역사지리학(歷史地理學)을 세밀히 고증한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저술함.
1712~1791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제천ㅣ경기도>광주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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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지화(牛李之禍) - 우이당쟁(牛李黨爭)
중국 당(唐) 나라의 목종(穆宗)~무종(武宗) 연간에 우승유(牛僧孺)ㆍ이종민(李宗閔)이 당파를 결성하여 이길보(李吉甫)ㆍ이덕유(李德裕) 부자와 맞서 대립한 사건. 과거 출신 관료와 귀족 관료 사이의 당쟁으로, 820년경부터 40년간 격렬한 정쟁이 계속됨.
중국>당 , 중국 , 사건>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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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공(右翊公) - 유보(劉輔)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둘째 아들. 시호는 헌(獻). 《경씨역(京氏易)》ㆍ《효경(孝經)》ㆍ《논어(論語)》 및 《도참(圖讖)》을 해설하고, 《오경론(五經論)》을 지었음.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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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지(禹益之) - 우언겸(禹彦謙)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대사성(大司成) 등을 지낸 우성전(禹性傳)의 생부. 1537년(중종 32)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ㆍ안동 판관(安東判官)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단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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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友仁)@조우인 - 조우인(曺友仁)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광해군(光海君)을 풍자하는 시를 지어 투옥되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우부승지(右副承旨) 등을 지냄. 시ㆍ글씨ㆍ그림에 능했음.
1561~162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창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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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友仁) - 강문회(姜文會)
조선 예종(睿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성종 때에는 사표(師表)로 추앙되었으나,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으로 관직을 버리고 단성(丹城)으로 낙향하여 후진양성에 힘씀. 저서로 《소요당기(逍遙堂記)》가 있음.
1433~149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단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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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友仁)@변우인 - 변우인(卞友仁)
조선 중중(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초계(草溪). 창신교위(彰信校尉) 변찬(卞瓚)의 아들로, 1513년(중종 8)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초계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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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友仁)@이우인 - 이우인(李友仁)
조선 선조(宣祖) 때의 유학. 본관은 여주(驪州).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사필(李士弼)의 아들이며 좌찬성(左贊成) 이상의(李尙毅)의 아버지로, 1568년(선조 1)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1535~?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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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友仁)@미우인 - 미우인(米友仁)
중국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문신ㆍ서화가. 아버지 미불(米芾)이 대미(大米)라고 불린 데 대해 소미(小米)라고 불림. 운산(雲山) 화법을 발전시켜 ‘미법산수(米法山水)’를 정착시키고, 초서와 예서에 뛰어남.
중국>송 , 중국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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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자(芋子) - 토란(土卵)
천남성과(天南星科)의 다년초(多年草). 추석 등의 명절에 먹는 전통음식 중 하나로, 남쪽 지방에서 많이 재배됨. 전통 민화(民畵)나 문양(紋樣)에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상징하며, 중국의 민산(岷山) 밑에서는 토란이 많이 생산되어 이곳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굶주리지 않는다고 함.
자연물>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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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잠(牛岑) - 우봉(牛峯)
황해도 남동쪽에 있던 옛 고을 이름. 1651년(효종 2)에 강음(江陰)과 병합하여 금천(金川)으로 개명함. 현재 황해북도 금천군(金川郡)에 속함.
황해도>우봉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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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愚庄) - 이희안(李希顔)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학자. 김안국(金安國)의 문인(門人)으로,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조식(曺植)과 교우하며 학문을 연마함.
1504~1559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초계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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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牛庄) - 우가장(牛家庄)
중국 요동(遼東)에 있던 역참(驛站). 조선시대에 북경(北京)을 왕래할 때 경유하던 요동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의 16개 역참 중의 하나로, 해주위(海州衛)와 사령(沙嶺) 사이에 있었음.
중국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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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牛莊) - 우가장(牛家庄)
중국 요동(遼東)에 있던 역참(驛站). 조선시대에 북경(北京)을 왕래할 때 경유하던 요동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의 16개 역참 중의 하나로, 해주위(海州衛)와 사령(沙嶺) 사이에 있었음.
중국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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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역(牛莊驛) - 우가장(牛家庄)
중국 요동(遼東)에 있던 역참(驛站). 조선시대에 북경(北京)을 왕래할 때 경유하던 요동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의 16개 역참 중의 하나로, 해주위(海州衛)와 사령(沙嶺) 사이에 있었음.
중국 , 지명>행정지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