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
응길(應吉)@유희경 - 유희경(劉希慶)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시인. 본관은 강화(江華). 천인 신분이지만 남언경(南彦經)에게 《가례(家禮)》를 배우고 특히 상례(喪禮)에 통달하였으며, 백대붕(白大鵬)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도함.
1545~1636 한국>조선후기 , 경기도>강화 , 인명>문사>문인
-
응남(應南) - 김응남(金應南)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로, 김형(金珩)의 아들.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이후 이조 판서(吏曹判書)ㆍ좌의정(左議政) 등을 지내면서 정국 안정에 힘씀.
1546~1598 한국>조선후기 , 강원도>원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
응남(應男) - 박응남(朴應男)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유조인(柳祖訒)ㆍ성제원(成悌元)ㆍ이중호(李仲虎)에게 수학하였으며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함.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음.
1527~1572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
응남루(凝南樓) - 영남루(嶺南樓)
경상도 밀양(密陽) 내일동(內一洞)에 있는 누각.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김주(金湊)가 세웠으며,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조선 현종(顯宗) 때 복원됨.
1365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밀양 , 유적>건물>누정
-
응덕(應德) - 양응덕(梁應德)
조선 중중(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로,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아들.
1523~?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
응도(應圖) - 홍여하(洪汝河)
조선 효종(孝宗)~숙종(肅宗) 때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로, 홍호(洪鎬)의 아들.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남인(南人) 집권 후에 사간(司諫) 등을 지냄.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음.
1621~167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흥 , 인명>관인>문신
-
응도(應度) - 권응도(權應度)
조선 정조(正祖) 때의 문신. 정유일(鄭惟一)의 문집을 간행하려고 했지만 병으로 일을 진행하지 못하였고, 관직은 순릉 참봉(順陵參奉)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
-
응두(應斗) - 김응두(金應斗)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울산(蔚山). 고부 군수(古阜郡守)를 역임하면서 민폐를 제거하고 봉공(奉公)에 힘써 포상을 받음.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진원 , 인명>관인>문신
-
응두(應斗)@남응두 - 남응두(南應斗)
조선 후기의 유학. 본관은 의령(宜寧). 남진(南軫)의 아들이며, 영동 현감(永同縣監) 남응정(南應井)의 형.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의령 , 인명>문사>유학
-
응두(應斗)@장응두 - 장응두(張應斗)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지례(知禮)로, 울진 현령(蔚珍縣令)을 지낸 장지효(張至孝)의 아들. 조욱(趙昱)ㆍ송순(宋純) 등과 교유하였으며 기묘명류(己卯名流)에 속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장수 , 인명>문사>유학
-
응두(應斗)@정응두 - 정응두(丁應斗)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낸 정옥형(丁玉亨)의 아들로, 좌찬성(左贊成)ㆍ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등을 지냄.
1508~157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려(應呂) - 금응려(琴應呂)
조선 전기의 문신.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과 시를 수창하며 지냈으며, 습독관(習讀官)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인명>관인>문신
-
응렬(應烈) - 이응렬(李應烈)
고려 고종(高宗)~원종(元宗) 때의 문신. 무신정권기의 권신 임유무(林惟茂)의 장인으로, 사공(司空) 등을 지냄. 원종의 밀명(密命)을 받은 송송례(宋松禮)에 의해 임유무가 제거되자 연좌되어 유배됨.
한국>고려후기 , 인명>관인>문신
-
응룡(應龍) - 김정룡(金廷龍)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의 아들이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 풍기 군수(豊基郡守)ㆍ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냈음.
1561~1619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상주ㅣ경상도>의성 , 인명>관인>문신
-
응룡(應龍)@유응룡 - 유응룡(柳應龍)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로, 영의정을 지낸 유순(柳洵)의 장남. 이조 참판(吏曹參判)ㆍ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등을 지냈음.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문화 , 인명>관인>문신
-
응룡(應龍)@남응룡 - 남응룡(南應龍)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1535년(중종 30)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뽑혔고, 벼슬은 직제학(直提學)과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함.
1514~1555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의령 , 인명>관인>문신
-
응룡(應龍)@최응룡 - 최응룡(崔應龍)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최이한(崔以漢)의 아들로, 박영(朴英)ㆍ이황(李滉)에게 수학하고,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ㆍ형조 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냄.
1514~158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선산 , 인명>관인>문신
-
응리원실종(應理圓實宗) - 법상종(法相宗)
중국 당(唐) 나라의 현장(玄奬)ㆍ규기(窺基)에 의해 성립한 유식사상(唯識思想) 계통의 불교종파. 존재의 공성(空性)보다도 현상을 세밀히 분석해 설명함.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의 태현(太賢)을 초조로 삼음.
중국>당 , 중국 , 사상>이론>교리
-
응린(應麟) - 김지연(金之衍)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응교(應敎)를 지낸 김유(金逌)의 아들로,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역임하였으며 협찬공신(協贊功臣)에 책록됨.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상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
응린(應麟)@김응린 - 김응린(金應麟)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1513년(중종 8) 진사시(進士試)에 입격하고, 1519년(중종 14) 문과 별시에 급제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김해 , 인명>관인>문신
-
응림(應臨) - 하응림(河應臨)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진주(晉州). 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지내고, 문장이 뛰어나 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렸으며, 서(書)ㆍ화(畫)에도 능했음.
1536~1567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응림(應霖) - 김주(金澍)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明) 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했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음. 문장이 뛰어나고 초서를 잘 씀.
1512~156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립(凝立) - 김지대(金之岱)
고려 고종(高宗)~원종(元宗) 때의 문신.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 고종(高宗) 4년에 거란군이 침입하자 아버지를 대신해 출전함.
1190~1266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청도 , 인명>관인>문신
-
응립(應立) - 박응립(朴應立)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명종(明宗) 때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낸 박세무(朴世茂)의 아들이며, 인조(仁祖) 때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낸 박지계(朴智誡)의 아버지로, 수안 군수(遂安郡守)를 지냄.
1517~158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명(應明)@민천부 - 민천부(閔天符)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민재문(閔在汶)의 아버지로, 1558년(명종 13)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며, 형조 좌랑(刑曹佐郞) 등을 지냄.
1531~1565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공주 , 인명>관인>문신
-
응명(應明) - 이몽량(李夢亮)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명종 때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되고, 대사간(大司諫)으로서 학문에 의거한 도학(道學) 정치를 제창하였으며, 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함.
1499~1564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경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
응무(應武) - 김응무(金應武)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상주(尙州). 목사(牧使)를 지낸 김사원(金士元)의 아들. 좌의정을 지낸 아들 김귀영(金貴榮)으로 인하여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상주 , 인명>문사>유학
-
응문(應文) - 유몽인(柳夢寅)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문인. 본관은 흥양(興陽)으로, 제용감 주부(濟用監主簿) 유탱(柳樘)의 아들. 한때 성혼(成渾)에게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명외교를 담당하는 등 공을 세웠으나, 인조 때 무고로 인해 반역죄로 처형됨. 저서로 《어우야담(於于野談)》 등이 있음.
1559~162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응물(應物) - 이인(李認)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합천(陜川). 이증수(李增壽)의 아들로, 1517년(중종 12)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조 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함.
148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삼가 , 인명>관인>문신
-
응물(應物)@위응물 - 위응물(韋應物)
중국 당(唐) 나라의 시인. 젊었을 때 의협심이 강하여 현종(玄宗)의 근위사관으로서 분방한 생활을 하였으나, 안녹산(安祿山)의 난 이후 학문에 정진하여 관계에 진출한 뒤 좌사 낭중(左司郞中)ㆍ소주 자사(蘇州刺史) 등을 지냄.
737~804 중국>당 , 중국 , 인명>문사>문인ㅣ인명>관인>문신
-
응병(應炳) - 유몽표(柳夢彪)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흥양(興陽). 제용감 주부(濟用監主簿)를 지낸 유탱(柳樘)의 아들로, 사섬시 부정(司贍寺副正) 등을 지냈으며, 제자백가(諸子百家)ㆍ천문(天文)ㆍ복서(卜筮) 등을 두루 섭렵함.
1543~1616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흥양 , 인명>관인>문신
-
응복(應福)@박응복 - 박응복(朴應福)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사간(司諫)을 지낸 박소(朴紹)의 아들로, 유조순(柳祖詢)ㆍ성제원(成悌元)ㆍ이중호(李仲虎)의 문인.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하였고, 정유재란 때 왕비를 수안(遂安)까지 호송함
1530~1598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합천ㅣ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복(應福) - 이응복(李應福)
조선 후기의 종친. 성종(成宗)의 일곱 번째 서자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의 증손이며, 양성군(陽城君) 이륜(李倫)의 아들로, 신흠(申欽)의 누이와 혼인함.
1560~1610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 , 인명>왕실>종친
-
응복(應福)@김응복 - 김응복(金應福)
조선 전기의 유학(幼學). 본관은 광주(光州). 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김진강(金振綱)의 아버지.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해주 , 인명>문사>유학
-
응봉사(應奉司) -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
고려시대~조선 초기에 외교문서를 담당하던 기관. 고려시대 임시기구인 문서감진색(文書監進色)을 고친 이름이며, 조선 태종(太宗) 때 기구가 확장되고, 1410년(태종 10)에 승문원(承文院)으로 관제가 개편됨.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시대 , 법제>관청
-
응부(應孚) - 유응부(兪應孚)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무신. 본관은 기계(杞溪). 단종(端宗)을 위하여 사절(死節)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 무신이면서도 유학에 뜻이 깊고, 절개(節介)ㆍ충의(忠義)의 상징으로 추앙받음.
?~1456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포천 , 인명>관인>무신
-
응빈(應賓) - 금응빈(琴應賓)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봉화(奉化). 청송 부사(靑松府使)를 지낸 금의(琴椅)의 아들.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단양 , 인명>문사>유학
-
응빙(應聘) - 양사언(楊士彦)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서예가. 본관은 청주(淸州). 회양(淮陽)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자연을 즐기고, 시(詩)ㆍ서(書)에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ㆍ김구(金絿)ㆍ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사대(四大) 서예가로 불림.
1517~158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예술인>서화가ㅣ인명>관인>문신
-
응빙(應聘)@이사언 - 이사언(李士彦)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청백리(淸白吏) 이우직(李友直)의 아버지로, 순릉 참봉(順陵參奉)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사인(應嗣寅) - 응휘겸(應撝謙)
중국 청(淸) 나라 성조(聖祖) 때의 학자. 1679년(성조 18)에 조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출사하지 않았고, 성리학(性理學)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성리대중(性理大中)》ㆍ《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등을 저술함.
1615~1683 중국>청 , 중국 , 인명>문사>학자
-
응삼(應三) - 김태정(金台鼎)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학자. 상호군(上護軍) 김자휘(金自輝)의 아들. 1450년(세종 32)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씀.
1426~1478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광산 , 인명>문사>학자
-
응상(應商) - 윤응상(尹應商)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윤시우(尹時雨)의 아들이며, 윤안국(尹安國)의 아버지로, 학행(學行)으로 벼슬하여 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지냄.
1547~159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상(應商)@김응상 - 김응상(金應商)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안동(安東). 무주 현감(茂朱縣監)을 지낸 김춘(金春)의 아버지로,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문사>유학
-
응상(應祥)@채응상 - 채응상(蔡應祥)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인천(仁川). 채인손(蔡仁孫)의 아들로, 1540년(중종 35)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며, 김준(金濬)ㆍ박승임(朴承任) 등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
응상(應祥)@이응상 - 이응상(李應祥)
조선 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이륜(李倫)의 아들로 파릉수(坡陵守)에 봉해짐.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 , 인명>왕실>종친
-
응상(應祥) - 유세귀(柳世龜)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종친부 전첨(宗親府典籤)을 지내고, 1527년(중종 22) 상진(尙震)ㆍ송순(宋純) 등 24인과 계축갑계(癸丑甲契)를 만듦.
1493~?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응생(應生) - 김응생(金應生)
조선 명종(明宗) 때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이황(李滉)의 문인. 자양산(紫陽山) 아래 서숙(書塾)을 짓고 후배의 교육에 전력하였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배향한 임고서원(臨皐書院)의 건립을 주도함.
1496~1555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영천(永川) , 인명>문사>학자
-
응서(應恕) - 조충수(趙忠秀)
조선 명종(明宗) 때의 유학. 본관은 양주(楊州). 한산군(漢山君) 조진(趙振)의 아버지로, 영의정(領議政)과 한양부원군(漢陽府院君)에 추증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
응서(應瑞)@민응서 - 민응서(閔應瑞)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무신. 송인수(宋麟壽)와 함게 동경계(同庚契)를 만들어 교유했고, 평안도 병마절도사ㆍ제주 목사(濟州牧使)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냄.
1499~? 한국>조선전기 , 인명>관인>무신
-
응서(應瑞)@송응서 - 송응서(宋應瑞)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승사랑(承仕郞) 송세영(宋世英)의 아들이며, 신녕 현감(新寧縣監) 송이창(宋爾昌)의 아버지. 성제원(成悌元)의 문인으로, 중추부 경력(中樞府經歷) 등을 지냄.
1530~1608 한국>조선후기 , 충청도>회덕 , 인명>관인>문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