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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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제시(應製詩) - 응제시주(應製詩註)
조선 문종(文宗)~세조(世祖) 때의 문신인 권람(權攬)의 저서. 1권 1책. 목판본. 할아버지 권근(權近)이 중국 명(明) 나라 태조(太祖)의 명으로 지은 〈응제시(應製詩)〉와 명 태조가 권근에게 하사한 〈어제시(御製詩)〉에 주석을 붙임.
한국>조선전기 , 문헌>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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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凝之)@육유지 - 육유지(陸維之)
중국 송(宋) 나라의 은자. 속세를 초월한 뜻을 가지고 대조동천(大滌洞天)의 석실(石室)에 은거하여 시와 술을 즐기며 유유자적함.
중국>송 , 중국 , 인명>기타인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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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凝之) - 유환(劉渙)
중국 송(宋) 인종(仁宗) 때의 문신. 영상령(潁上令)을 지냈으나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상관을 섬기지 못하고 물러나 여산(廬山)에 은거함. 구양수(歐陽脩)가 〈여산고(廬山高)〉를 지어 그의 절개를 찬미함.
1000~1080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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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應之)@홍응 - 홍응(洪應)
조선 문종(文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홍심(洪深)의 아들.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고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ㆍ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좌의정 등을 지냄. 문장과 글씨에 능했음.
1428~1492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남양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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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應之) - 반서린(潘瑞鱗)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광주(光州). 반강(潘岡)의 아들로, 김안국(金安國)의 《모재집(慕齋集)》에 그에 대한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음.
?~1464?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광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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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應之)@신응지 - 신응지(申應之)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낸 신분(申賁)의 아들로, 의흥 현감(義興縣監) 등을 역임하였음.
1420~1482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평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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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膺之)@심응지 - 심응지(沈膺之)
조선 전기의 유학. 이해수(李海壽)와 교유하여 《약포유고(藥圃遺稿)》에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여주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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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膺之) - 정유선(鄭惟善)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도정(都正)을 지낸 정세현(鄭世賢)의 아들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ㆍ예조 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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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應眞) - 아라한(阿羅漢)
불교에서 열반(涅槃) 또는 깨달음에 이른 성자(聖者)를 가리키는 말. 원래는 석가(釋迦)의 가까운 제자 16명을 지칭하였으나 뒤에는 500명까지 늘어났으며, 후대에는 개인적인 깨달음에 만족한 소승(小乘)의 수행자들을 가리키기도 함.
사상>술어>핵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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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應辰) - 어응진(魚應辰)
조선 중종(中宗) 때의 유학. 본관은 함종(咸從). 장악원 정(掌樂院正)을 지낸 어영준(魚泳濬)의 둘째 아들로, 1528년(중종 23)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함.
1510~1572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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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창(應昌)@송응창 - 송응창(宋應昌)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문신ㆍ장군. 병부 우시랑(兵部右侍郞)ㆍ대사마(大司馬)를 지내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략 군문(經略軍門)으로 임명되어 제독 군무(提督軍務) 이여송(李如松) 등과 명군(明軍) 4만여 명을 이끌고 참전함.
1536~1606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무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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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창(應昌) - 권응창(權應昌)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지낸 권희맹(權希孟)의 아들로, 이조 참판(吏曹參判)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냄.
1500~1568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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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창(應昌)@안응창 - 안응창(安應昌)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로, 대군 사부(大君師傅) 등을 지냄.
1593~?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영천(榮川)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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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척(應陟) - 고응척(高應陟)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학자ㆍ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김범(金範)의 문인. 《대학(大學)》의 여러 편을 시조로 읊어 교훈시를 만드는 등 사상적 체계를 시(詩)ㆍ부(賦)ㆍ가(歌)ㆍ곡(曲) 등으로 표현함.
1531~1605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선산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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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凝川)@박숭원 - 박숭원(朴崇元)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하여 선조로부터 보검(寶劍)을 하사받고 도승지를 거쳐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올랐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됨.
1532~1593 한국>조선후기 , 서울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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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凝川) - 밀양(密陽)
경상남도 동부에 있는 고을 이름. 부산과 대구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
경상도>밀양 , 지명>행정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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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凝川)@허조 - 허조(許慥)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 본관은 하양(河陽). 허후(許詡)의 아들이며 이개(李塏)의 매부(妹夫)로,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을 지냄. 성삼문(成三問) 등이 단종(端宗) 복위를 모의할 때 가담하였으나, 거사가 수포로 돌아가자 자진(自盡)함.
1430~145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하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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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應千)@황징 - 황징(黃澄)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를 지낸 황사윤(黃斯允)의 아들로, 고원 군수(高原郡守) 등을 지냄.
1456~151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창원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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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應千) - 박하담(朴河淡)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학행(學行)으로 장례원 사평(掌隸院司評) 등에 제수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청도(淸道)의 운문산(雲門山) 아래에 소요당(逍遙堂)을 짓고 여생을 보냈으며, 김대유(金大有)와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음.
1479~156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청도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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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應天) - 한서귀(韓瑞龜)
조선 단종(端宗)~연산군(燕山君) 때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한승순(韓承舜)의 아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협력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등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청주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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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應川) - 박응천(朴應川)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지제교(知製敎) 박소(朴紹)의 아들로, 대구 부사(大邱府使)ㆍ사재감 정(司宰監正) 등을 지냄.
?~1581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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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군(凝川君)@박진원 - 박진원(朴震元)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明) 나라에 다녀오고, 형조 판서(刑曹判書) 등을 지냄.
1561~162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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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군(凝川君)@박중손 - 박중손(朴仲孫)
조선 세종(世宗)~세조(世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에 책록되고, 좌참찬(左參贊)을 역임함.
1412~1466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밀양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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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군(凝川君) - 박영균(朴永均)
고려 후기의 문신.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아버지로, 판도판서(版圖判書)와 재상(宰相)을 지냈으며,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다가 뒤에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으로 추봉됨.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밀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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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박씨(凝川朴氏) -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왕(始祖王)으로 삼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중시조(中始祖)로 하는 성씨. 박씨의 종가(宗家).
한국>신라 , 경상도>밀양 , 인명>집단>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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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청(凝淸) - 신천(辛蕆)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스승을 문묘(文廟)에 종사하게 하였으며, 지공거(知貢擧)를 거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등을 역임함.
?~1339 한국>고려후기 , 경상도>영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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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청(應淸) - 강응청(姜應淸)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로, 강세경(姜世卿)의 아들. 효행(孝行)으로 인의(引儀)에 제수되고 용궁(龍宮)의 용곡리사(龍谷里社)에 배향됨.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용궁 , 인명>기타인명>효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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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태(應台)@양응태 - 양응태(梁應台)
조선 중중(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둘째 아들로,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냈음.
1517~?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능성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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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태(應台)@강응태 - 강응태(姜應台)
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밀양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 등을 지내고,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임천서원(臨川書院)에 배향됨.
1495~155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진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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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태(應台) - 민보익(閔輔翼)
조선 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1483년(성종 14) 춘당대시(春塘臺試)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함.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여주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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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택(應澤) - 강운상(姜雲祥)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진주(晉州). 효성이 지극해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아들 강첨(姜籤)과 손자 강학년(姜鶴年)이 귀하게 되어 인조(仁祖) 때 영의정에 추증됨.
1526~1587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진주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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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필(應畢) - 양응필(梁應畢)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제주(濟州)로,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아들.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을 제수받았으나 출사하지 않고, 경학(經學)에 몰두함.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능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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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하(應河) - 신응하(申應河)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음. 고경명(高敬命)과 교유하여, 《제봉집(霽峯集)》에 그를 송별하며 쓴 〈송신경문환경(送申景文還京)〉이란 시가 실려 있음.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광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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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함(應緘) - 김응함(金應緘)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김경운(金慶雲)의 아버지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냄.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안동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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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현(應賢) - 최응현(崔應賢)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중종(中宗) 때의 인물인 최세도(崔世道)ㆍ최세절(崔世節)ㆍ최세충(崔世忠) 형제의 아버지로, 여러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양친(養親) 등을 이유로 대부분 사임함. 형조 참판(刑曹參判) 등을 지냄.
1428~1507 한국>조선전기 , 강원도>강릉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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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현(應賢)@방응현 - 방응현(房應賢)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 조식(曺植)ㆍ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과거(科擧)에 뜻을 두지 않았으며, 임란의병장 변사정(邊士貞)과 친교가 두터웠음.
1524~1589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남원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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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현(應鉉) - 박응현(朴應鉉)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박린(朴嶙)의 아들로, 예빈시 정(禮賓寺正)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경기도>죽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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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협(應夾) - 금응협(琴應夾)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유일(遺逸)로 뽑혀 6품직을 초수(超授)하고 하양 현감(河陽縣監) 등을 지냄.
1526~159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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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황(應璜) - 강응황(姜應璜)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주(晉州)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ㆍ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일로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병조 좌랑(兵曹佐郞)ㆍ예산 현감(禮山縣監)ㆍ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냄.
1571~1644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함양ㅣ서울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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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회(應會)@서응회 - 서응회(徐應會)
조선 전기의 유학. 권호문(權好文)이 지은 〈차기서동년(次寄徐同年)〉이라는 시가 《송암집(松巖集)》에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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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회(應會)@신응회 - 신응회(辛應會)
조선 전기의 문인.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이 그와 관련하여 지은 시가 《백담집(栢潭集)》에 실려 있음.
한국>조선전기 , 인명>문사>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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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회(應會) - 김응회(金應會)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제자.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과 종유(從遊)했으며,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매부(妹夫). 효행이 뛰어나 정려(旌閭)됨.
1555~1597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담양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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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후(應侯) - 범수(范睢)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재상. 원래는 위(魏) 나라 사람으로 변설(辨說)에 능하였으며, 진 소왕(昭王)을 도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주창하여 육국(六國)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고, 그 공으로 응후(應侯)에 봉해짐.
?~B.C.255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경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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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훈(應勳) - 양응훈(楊應勳)
중국 명(明) 나라 신종(神宗) 때의 무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요동광녕진수총병관(遼東廣寧鎭守總兵官)의 직책을 맡아 조선에 1차로 파병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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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훈(應勳)@박응훈 - 박응훈(朴應勳)
조선 선조(宣祖) 때의 효자. 효성이 지극하여 1601년(선조 34)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황간(黃澗)의 송계서원(松溪書院)에 배향됨.
1539~1590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충주 , 인명>기타인명>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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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훈(應壎) - 금응훈(琴應壎)
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영춘 현감(永春縣監)ㆍ양천 현감(陽川縣監) 등을 역임하고 《퇴계집(退溪集)》 간행실무자로 참여함.
1540~1616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예안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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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휴(應休)@안천서 - 안천서(安天瑞)
조선 전기의 유학. 이이(李珥)의 문인(門人)으로, 성리학(性理學)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성혼(成渾)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인명>문사>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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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휴(應休)@금봉서 - 금봉서(琴鳳瑞)
조선 전기의 문신. 시문에 능하여 퇴계 이황(李滉)의 문집을 교열했으며,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과 교유함.
한국>조선전기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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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휴(應休) - 홍인지(洪仁祉)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홍덕연(洪德演)의 둘째 아들로, 1546년(명종 1)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으며, 좌랑(佐郞)을 지냄.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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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희(應禧) - 이응희(李應禧)
조선 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이륜(李倫)의 아들로 파계수(坡溪守)에 봉해짐.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 , 인명>왕실>종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