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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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직(汪直)
중국 명(明) 나라 헌종(憲宗) 때의 환관(宦官). 헌종의 신임을 얻어 정권을 전단함.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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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직(王直)
중국 명(明) 나라 성종(成宗)~영종(英宗) 때의 문신. 20여 년간 한림(翰林)에 있으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왕영(王英)과 이름을 나란히 함. 이부 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내고, 저서에 《억암집(抑菴集)》이 있음.
1379~1462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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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振)
중국 명(明) 나라의 환관(宦官). 영종(英宗)의 신임을 얻어 정권을 전단함. 토목(土木)의 변란 때 영종을 호종하여 정벌에 나섰다가 전사함.
?~1449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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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珒)
고려 제20대 신종(神宗)의 손자. 신종의 둘째 아들 양양공(襄陽公) 왕서(王恕)의 큰아들로, 약관의 나이에 요절함.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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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瑱)
고려 후기의 종친. 조인규(趙仁規)의 첫째 아들인 조서(趙瑞)의 사위. 《가정집(稼亭集)》의 〈조정숙공사당기(趙貞肅公祠堂記)〉에 그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음.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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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稹)
고려 후기의 종친. 현종(顯宗)의 아들인 평양공(平壤公)의 5대손이며, 희종(熙宗)의 비인 성평왕후(成平王后)의 아버지. 명종(明宗)의 딸인 연희궁주(延禧宮主)와 결혼하였고, 불교와 도교에 조예가 깊음.
?~1220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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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縉)
중국 당(唐) 나라의 문신. 왕유(王維)의 동생으로 형제간의 우애가 각별하여 자신의 관직을 감등하여 형의 죄를 속죄함.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 태원(太原)의 소윤(少尹)이 되어 태원을 지킴.
700~781 중국>당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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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질(王銍)
중국 송(宋) 나라 태종(太宗) 때의 학자. 저서로 《운계집(雲溪集)》ㆍ《묵기(默記)》ㆍ《사륙화(四六話)》등이 있음.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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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징(王澂)
고려 후기의 종친. 제8대 현종(顯宗)의 9대손이며, 제23대 고종(高宗)의 외손자. 1275년(충렬왕 1) 이후 모두 3회에 걸쳐 귀족의 자제들을 거느리고 원(元) 나라에 가서 독로화(禿魯花)가 됨.
?~1292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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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징(王澄)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진(晉) 나라의 문신. 승상(丞相)을 지낸 왕연(王衍)의 동생으로 형주 자사(荊州刺史)를 지냈음. 청주 자사(靑州刺史)를 지낸 사촌형 왕돈(王敦)에게 죽음을 당했음.
267~312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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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차옹(王次翁)
중국 송(宋) 나라 휘종(徽宗)~고종(高宗) 때의 문신. 진회(秦檜)와 결탁하여 금군(金軍)과의 화친을 강력히 주장하고, 한세충(韓世忠)ㆍ장준(張浚)ㆍ악비(岳飛) 등을 모함하여 탄핵함. 저서에 《양하집(兩河集)》이 있음.
1079~1149 중국>송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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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찬(王粲)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문신ㆍ학자. 아들 유종(劉琮)을 조조(曹操)에게 귀순시키고 시중(侍中)으로서 제도개혁에 진력함.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에 뛰어나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꼽힘.
177~217 중국>삼국시대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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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王淐)
고려 제23대 고종(高宗)의 아들. 원종(元宗)의 동모제(同母弟)로 1269년(원종 10) 임연(林衍) 등에 의해 즉위하였으나, 몽고의 압력으로 곧 폐위되고 원종이 복위함.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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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재(汪楚材)
중국 송(宋) 나라 광종(光宗) 때의 문신ㆍ학자. 주희(朱熹)와 오경(吳儆) 등에게 배우면서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며, 석유(碩儒)로 명성을 떨침. 호남 안무사(湖南按撫司) 등을 지냄.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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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촉(王蠋)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문신. 제 나라가 연(燕) 나라의 공격을 받아 거의 망하게 되었을 때 연 나라 장군 악의(樂毅)가 초빙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로 거절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음.
?~B.C.284 중국>춘추전국시대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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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춘(王瑃)
고려 제22대 강종(康宗)의 부마(駙馬). 강종 원년에 수령궁주(壽寧宮主)와 혼인함.
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개성 , 인명>왕실>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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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충(王充)
중국 후한(後漢) 때의 학자. 반표(班彪)의 제자이며, 틀에 짜인 유교 사상을 철저히 거부하고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추구한 사상적 전환기의 선구자로, 당시의 전통적 정치와 학문을 비판하며 《논형(論衡)》을 저술함.
27~97? 중국>후한 , 중국 , 인명>문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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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칙(王則)
중국 송(宋) 나라 인종(仁宗)때의 역적. 일개 군졸로서 패주(貝州)에서 반란을 일으켜 자칭 동평군왕(東平郡王)이라 하고 연호도 득승(得勝)이라 하였으나 문언박(文彥博)에 의해 평정됨.
중국>송 , 중국 , 인명>기타인명>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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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탄지(王坦之)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문신. 치초(郗超)와 더불어 환온(桓溫)의 막하(幕下)가 되었다가 효무제(孝武帝) 때 사안(謝安)과 함께 황제를 도와 정무(政務)를 주도하였으며, 중서령(中書令) 등을 역임함. 불교를 신봉하고 형명학(刑名學)을 숭상하였음.
330~375 중국>남북조시대 , 중국 , 인명>관인>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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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통(王通)
중국 수(隋) 나라의 학자. 기본 바탕은 유학에 두고 유ㆍ불ㆍ도 합일을 주장했으며, 제자 중에서 당(唐) 나라의 문무대관이 된 사람들이 많음.
584~617 중국>수 , 중국 , 인명>문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