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52,762건)
전체(52,762건)
-
건숙(健叔) - 성운(成運)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형인 성우(成遇)가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화를 당하자 속리산(俗離山)에 은거함. 시문(詩文)에 뛰어나고, 서경덕(徐敬德)ㆍ조식(曺植)ㆍ이지함(李之菡)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정진함.
1497~1579 한국>조선전기 , 충청도>보은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
건안구씨(建安丘氏) - 구부국(丘富國)
중국 송(宋) 말~원(元) 초의 문신ㆍ학자. 주희(朱熹)의 문인에게서 수학하고 단양 첨판(端陽僉判)을 지냈으나, 나라가 망하자 벼슬하지 않고 《주역집해(周易輯解)》ㆍ《경세보유(經世補遺)》를 저술함.
중국>원ㅣ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건안섭씨(建安葉氏) - 섭채(葉采)
중국 송(宋) 이종(理宗) 때의 문신. 건양(建陽) 출신으로 124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경헌부 교수(景獻府敎授)ㆍ한림학사 겸 시강(翰林學士兼侍講) 등을 역임하였고, 명도(明道)와 주자(朱子)의 설을 모아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를 남김.
?~1260 중국>송 , 중국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건안칠가(建安七家) - 건안칠자(建安七子)
중국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인 건안(建安) 연간에 시문(詩文)으로 이름을 떨친 일곱 명의 문학자. 조조(曹操)ㆍ조비(曹丕)ㆍ조식(曹植) 삼부자를 중심으로 모인 공융(孔融)ㆍ진림(陳琳)ㆍ왕찬(王粲)ㆍ서간(徐幹)ㆍ완우(阮瑀)ㆍ응창(鷹瑒)ㆍ유정(劉楨)을 이름.
중국>후한 , 중국 , 인명>집단>조직
-
건왕(建王) - 효종(孝宗)@송
중국 송(宋) 나라의 제11대 황제. 재위 1162~1189. 장준(張浚)에게 명하여 금(金)을 정벌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금과 숙질(叔姪) 관계로 화의(和議)를 맺음. 내정(內政) 개혁을 실시해 강남(江南)의 개발이 진척되어 북송(北宋)을 능가하는 번영을 이룸.
1127~1194 중국>송 , 중국 , 인명>왕실>국왕
-
건용(蹇瑢) - 건의(蹇義)
중국 명(明) 나라 태조(太祖)~선종(宣宗) 때의 문신. 오랫동안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내면서 다섯 명의 황제를 보좌하고, 명초(明初)에 전장제도(典章制度)의 수립과 확립에 기여함.
1363~1435 중국>명 , 중국 , 인명>관인>문신
-
건원릉(健元陵) - 태조(太祖)@조선
조선 제1대 왕. 재위 1392~1398. 고려 말에 무장(武將)으로서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크게 활약했으며, 개혁파 사류(士類)와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후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짐.
1335~1408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함경도>영흥ㅣ서울 , 인명>왕실>국왕
-
건재(健齋) - 김천일(金千鎰)@1537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김언침(金彦琛)의 아들이며, 이항(李恒)의 문인(門人). 임진왜란 때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수원(水原)ㆍ강화도(江華島)에서 전공을 세우고, 2차 진주성(晉州城) 싸움에서 성이 함락되자 순사함.
1537~1593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나주 , 인명>관인>문신
-
건재선생문집(健齋先生文集) - 건재집(健齋集)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김천일(金千鎰)의 시문집(詩文集). 목활자본. 11권 2책. 초간본(初刊本)은 1893년(고종 30)에 김문상(金玟相) 등이 유실되고 남은 유문(遺文)을 수집하여 활자로 인간(印刊)함.
1893 한국>근대 , 문헌>서명
-
건적(建賊) - 범여위(范汝爲)
중국 송(宋) 나라 고종(高宗) 때의 도적. 고종 때 경제적 여건에 비해 인구가 과다해지고 이에 따라 생활이 어려워지자 농민들을 이끌고 난을 일으킴.
중국>송 , 중국 , 인명>기타인명>도적
-
건정(建正) - 탁중(卓中)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탁희립(卓希立)의 아들로, 김숙자(金叔滋)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하였으며, 전적(典籍) 등을 역임함.
1404~1472 한국>조선전기 , 전라도>광산 , 인명>관인>문신
-
건제(乾濟) - 송명의(宋明誼)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으며, 고려의 국운이 쇠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함.
한국>고려후기 , 충청도>회덕 , 인명>관인>문신
-
건중(健中) - 조식(曺植)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출사하지 않고 학문과 제자 교육에 힘썼으며 이황(李滉)과 더불어 영남 사림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함.
1501~157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진주ㅣ경상도>삼가ㅣ경상도>김해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
건중(健仲) - 박응순(朴應順)
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선조의 비(妃)인 의인왕후(懿仁王后)의 아버지로, 자경(子敬) 성제원(成悌元)의 문인.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ㆍ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지냄.
1526~1580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합천ㅣ서울 , 인명>관인>문신ㅣ인명>왕실>인척
-
건중(楗仲) - 조식(曺植)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학자. 출사하지 않고 학문과 제자 교육에 힘썼으며 이황(李滉)과 더불어 영남 사림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함.
1501~1572 한국>조선전기 , 경상도>진주ㅣ경상도>삼가ㅣ경상도>김해ㅣ서울 , 인명>문사>학자
-
건지(健之)@유영건 - 유영건(柳永健)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유감(柳堪)의 아들로, 맹산 현감(孟山縣監)ㆍ괴산 군수(槐山郡守) 등을 지내고, 이직언(李直彦)ㆍ이원익(李元翼) 등과 교유함.
1535~1599 한국>조선후기 , 전라도>전주 , 인명>관인>문신
-
건지(健之)@이야순 - 이야순(李野淳)
조선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이상정(李象靖)ㆍ김종덕(金宗德)의 문하에서 이황(李滉)의 성리학을 전습(傳習)하였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음.
1755~1831 한국>조선후기 , 경상도>진보 , 인명>문사>학자
-
건지(健之) - 이자건(李自健)
조선 성종(成宗)~중종(中宗) 때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이주(李湊)의 아들로, 연산군(燕山君) 때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선산(善山)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복직된 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지냄.
1455~1524 한국>조선전기 , 서울 , 인명>관인>문신
-
건천(巾川) - 정광(程廣)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ㆍ학자. 본래 중국 사람으로, 정이(程頤)의 후손. 공민왕(恭愍王) 때 전중판시사(殿中判寺事)를 지냈고, 정몽주(鄭夢周)ㆍ길재(吉再) 등과 교유하며 도학을 연구함. 고려가 망할 것을 예견하고 경기도 광주(廣州)에 낙향하여 은거함.
한국>조선전기ㅣ한국>고려후기 , 경기도>광주ㅣ경기도>개성 , 인명>문사>학자ㅣ인명>관인>문신
-
건평후(建平侯) - 두연년(杜延年)
중국 전한(前漢) 소제(昭帝)~선제(宣帝) 때의 문신.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어 곽광(霍光)과 함께 국정을 조율하여 현사(賢士)로 칭송됨. 공신으로 기린각(麒麟閣)에 화상이 걸림.
?~B.C.52 중국>전한 , 중국 , 인명>기타인명>공신ㅣ인명>관인>문신